행동을 해야 할때 꼼짝도 안하는 것

제인 오스틴, 에마

by 나작

제인오스틴의 '에마'를 읽고 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워낙 두꺼운 책의 분량 때문인지, 며칠째 읽어도 진도가 안 나가고 좀 지치는 기분이다. 고전소설은 초반을 견뎌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도 처음엔 괴로워하다가 몇 번이나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 난다. 제인오스틴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오늘 에마에서 건진 문장은 어쩐지 뜨끔한 나이틀리 씨의 말이다.


"행동을 해야 할 때 꼼짝도 안 하는 것,

그냥 빈둥빈둥 즐기면서 사는 것,

그럴 구실을 찾아내는 데 자기가 대단한 전문가라고 뿌듯해하는 것,

뭐 그런 이득이라면 얼마든지 볼 수 있겠지."


아버지와 따로 살고 있는 프랭크 처칠이라는 청년에 대한 이웃의 소문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그는 곧 가겠다는 편지만 보내고 번번이 오지 않는다. 에마는 아마 그를 키워주고 보살펴주고 있는 집안의 눈치를 보느라 못 오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나이틀리 씨의 생각은 다르다. 스물셋이나 된 남자가 자기의 아버지를 보러 오는 의무조차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한다.


프랭크 처칠을 비난하는 말에 내가 뜨끔한 이유는, 요즘의 내 태도를 비난하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6월 중순까지 방송대학교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나름대로 집중해야 했다. 시험이 끝나면 매일 글을 써야지, 시험 때문에 못하는 일들을 시작해야지 결심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거의 한 달이 되어가도록 오히려 시험기간에 짬을 내어 집중하던 것보다 훨씬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무 시간이 넉넉해져서인지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고, 계획한 일들은 어쩐지 귀찮아져서 하지 않거나 흐지부지되었다.


요 며칠은 예전에 끝내지 못한 글을 마저 쓰려고 머리를 쥐어짜다가, 드디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럴듯한 구실을 잔뜩 붙여서. 그리고 글쓰기로부터 도망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서 원래 하던 일들을 다시 뒤적거렸다. 분명 한 달 전에는 이제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 놓고 말이다.


행동을 해야 할 때 꼼짝도 안 하는 것, 그냥 빈둥빈둥 즐기면서 사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다시 마음을 잡아봐야겠다. 오늘까지는 지쳐있었지만, 내일은 다를 것이다.


일단, 그래서 프랭크 처칠이 어떤 사람인지, 에마를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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