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중 한 줄

by 나작

나는 좋은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좋은 사람의 정의가 무엇인지 구구절절 나열할 생각은 없다. ‘좋은’이라는 말처럼 애매모호한 말도 드물지만, 그 말은 한편으로는 확실한 어떤 느낌을 준다. ‘좋은 느낌’ 말이다.


오늘의 책 속 한 줄


예닐곱 해 전에 읽었던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다. 한 스님께서 선물로 주셨던 책이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만 특별히 주는 책이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별생각 없이 받아 들고 왔다. 그러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의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 올랐을 때 그 ’ 특별‘이 무엇일까 궁금해져서 펼쳐 들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한없이 밑줄을 그었다.


특히 나는 ‘에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열심히 공감하며 읽었는데, 바로 그 당시의 내가 에고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들보다는 좀 더 낫다는 우월감, 그런데 이런 취급밖에 못 받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인정욕구, 이렇게 결국 소진되어 갈 것 같은 불안감,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등에 휩싸여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이런 생각들이 다 ‘에고’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좋았는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한 뒷부분은 대충 읽고 넘어가버렸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고 그때의 감정들은 얼마 전까지도 내면 깊숙이 어딘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자신 안에 있는 좋은 것을 발견하고, 그 좋은 것이 밖으로 나오게 함으로써만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나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도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자기혐오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오늘 다시 읽으며 이 문장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좋은 사람’이라는 외부의 개념을 좇아, 본래의 내가 아닌 다른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발견하고 알아차려서 나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 그 자체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해 본다.


얼마전, 예전의 괴로운 기억에 대해 글로 써서 나열해본 후에 신기하게도 그때의 감정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었다. 하나씩 싫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어내는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글이 완성된 후에는 다시 그 일들을 떠올려도 평온했다. 그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방법은 하나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는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읽고나면 조금은 더 “좋은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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