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먹는 우울한 그림자

찰스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속 한 문장

by 나작

냉소와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을 보면 흔히들 그의 어두운 과거, 가령 어린 시절의 상처나 극심한 외로움, 불우했던 가정 환경 등을 추측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들이 원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성인이 된 후로 어린 시절을 자주 되돌아보면서, 내가 가진 냉소적이고 자기혐오적인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고민해왔다.


원인을 따져보면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었다. 다소 빈곤함을 느꼈던 어린 시절이나, 부모님의 특정 성향과 부딪혔던 경험들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들이 트라우마가 될 만큼 극심한 경험은 아니었다. 어쩌면, 원래 타고난 우울도 있는 것 아닐까.


책 속 한 줄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드니 칼튼은 타고난 냉소와 무기력함을 지닌 인물처럼 느껴진다. 외로운 과거와 혼란한 시대를 살았지만, 과연 그것이 그의 성향을 형성한 원인인 것일까?


슬프고 슬프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좋은 재능과 감정을 가졌지만 사용할 수 없어 썩히고 있는 한 남자는,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행복을 만들어 갈 수도 없는 그 남자는 스스로의 우울한 그림자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저 그것이 자신을 좀먹어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Sadly, sadly, the sun rose; it rose upon no sadder sight than the man of good abilities and good emotions, incapable of their directed exercise, incapable of his own help and his own happiness, sensible of the blight on him, and resigning himself to let it eat him away.


소설 속 시드니 칼튼은 가장 의미심장한 인물이다. 그의 재능은 의미 없이 소진되고, 사랑은 그를 희생으로 이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삶이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아직 이야기를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더 탐구하며 읽어보려고 한다.


화자가 시드니 칼튼을 설명하는 부분이 어쩐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 또한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나를 사랑해 준 많은 이들의 기억이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대여섯 살 무렵의 나는 이미 우울감에 잠겨 있었다. 매일 "예쁘다", "똑똑하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도 나는 나 자신을 혐오했다. 자라면서도 스스로를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하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이끌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결코 들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이었다. 악뮤의 '후라이의 꿈' 가사는 십대와 이십대의 내 심리 상태를 정확히 표현한 노래다.


의미 있는 일을 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었고, 즐거운 일을 하고 나서도 '지금 즐거우면 뭐하나' 싶었다. 도움을 받아도 그저 부담스럽기만 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우울한 그림자'가 오랫동안 나를 좀먹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아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무력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를 구제해줄 수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좀 더 어릴 적 삶의 물살은 비교적 잔잔해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어도 괜찮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물살이 점점 거세짐을 느낀다. 이제는 나 자신을 꽉 붙들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시드니 칼튼보다 덜 암울한 시대를 사는 나는, 내 삶을 구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keyword
이전 03화내가 한 권의 책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