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 한 구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알았다고 해서 다 알게 된 것도 아니다. 책 한 권이 한 명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서문을 읽다가 질려버릴 수도 있고, 드문드문 읽고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끝까지 잘 읽었다고 여기지만 곁텍스트의 작은 부분을 소홀히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찰스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반부다. 파리로 향하는 우편마차의 승객들을 묘사하면서 화자는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암시하고 있다. 저마다 비밀을 간직한 고립된 인간들, 그들의 운명과 죽음을 사유한다.
난 더 이상 좋아하는 책을 넘길 수도 없고, 끝까지 읽겠다는 헛된 희망도 품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그 속에 잠겨 있을 보물과 이런저런 것들에 잠시 반사된 빛이 순간 일렁이는 장면 또한 볼 수 없다.
No more can I turn the leaves of this dear book that I loved, and vainly hope in time to read it all. No more can I look into the depths of this unfathomable water, wherein, as momentary lights glanced into it, I have had glimpses of buried treasure and other things submerged.
이 책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류사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다.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운명은 더욱 알 수 없는 법이다.
혁명의 시대를 읽으며 나 역시 개인적 변화의 기로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은 글을 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를 다지는 시기이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아직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로 인해 기존에 해왔던 일을 병행해야 할지 고민인 것이다. 글을 쓰는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까?
특히 최근에 올라온 채용공고 하나가 그 고민에 불씨를 댕겼다. 나를 소모시키는 구조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까, 돌아간다면 조금은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내가 전만큼 열정적일 수 있을까, 앞으로 나는 계속 그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수많은 의문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누구나 하는 고민이겠지만, 또 누군가는 치열한 고민과 실천 속에서 해법을 찾은 일이기도 하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점점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처음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좀 더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루는 적어도 한 번은 더 하고 싶다고 느꼈다가 또 다음날엔 더 이상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거의 열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번에는 채용여부의 불확실성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채용이 되었을 경우의 부담과 되지 않았을 경우의 부담을 저울질하는 것까지 더해지니,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도, 그들이 나를 채용할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인지되면서 불안감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운명조차 모른다.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무엇을 개척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때가 많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무슨 책을 쓰고 싶은 걸까? 누가 어떤 페이지를 읽어주길 바라고 있을까? 남몰래 행간에 숨겨놓은 맥락은 무엇이 될까?
책의 마지막장에 이르기 전에는 결말을 알 수 없다. 책을 쓰는 이 조차도.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나의 선택만으로 이 책이 쓰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의 선택이 내 삶의 변화를 이끌 것인지 지연시킬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디킨스가 말했듯 우리 모두는 수수께끼이다. 나 자신조차도. 다만 희망을 내려놓고 책을 덮어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