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오스틴, ‘에마’ 속 한 줄
아무리 명상을 하고 마음 챙김을 해도 분노가 이는 한 사람이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종종 마음속에서 그와 만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 아직도 그 시간에 멈춰서 극복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
여전히 제인오스틴의 ‘에마’를 읽고 있다. 에마는 스스로 분별력 있다고 여기면서 남의 일에 이런저런 자기 견해를 피력하거나 참견을 하곤 한다. 철없는 부잣집 공주님이 잘난 체하며 끼어들거나 기대한 일들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 사건들이다. 에마는 엘튼 씨를 헤리엇 양과 엮어주려고 애쓰다가 엘튼 씨에게 고백을 받고 서로 몹시 불쾌한 기억을 남기며 헤어진다. 그리고 고작 몇 주후에 엘튼의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그를 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정들이 불가분 따라왔기 때문에, 도덕적인 면에서는 참회나 교훈, 혹은 정신 수양에 유익한 수치심의 근원으로 삼을지언정 정말이지 다시 보지 않았으면 했다.
에마가 엘튼의 고백을 거절하면서 해리엇 양을 사랑한 것 아니었냐고 하자, 엘튼은 버럭 화를 낸다. 그는 해리엇 양의 신분이나 지위가 자신보다 한참 떨어진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 태도에 에마도 황당해한다. 에마는 그런 엘튼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과 해리엇에게 괜한 희망을 갖게 해 상처를 받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에마 자신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
그는 내 상사였다. 나는 그보다 아랫직급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모욕으로 느껴졌고, 그의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지하고, 무례한 인격 자체가 같은 인간으로서 상처였다.
그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 내가 여기서 왕인데 니들이 어쩔래? 하는 태도였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왕께서는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 출근을 하고, 남자직원들을 이끌고 한나절을 사우나에서 보내고, 하루 종일 앉아서 야구를 보고 게임을 했다. 이사장은 다른 지역의 다른 기관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를 통해’ 업무보고를 받았다.
그는 근로계약서를 써주지 않았다. 우리는 계약서 같은 것보다 서로 상식적인 선에서 유연하게 일한다면서 ‘우리끼리, 알잖아’하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는 그 어떤 시스템도 만들지 않았다. 직원들이 휴가를 가려고 하면 그가 허락하면 되고 안 해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출장을 여행으로 여겼고, 다른 직원의 출장은 본인이 베풀어주는 휴가의 일종이었다.
그는 실업급여나 육아휴직 같은 제도가 기관에 불이익을 준다고 믿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쓸 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했고(물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다른 직원이 그만둘 때는 현금 백만 원을 주면서 실업급여 신청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그 직원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회의시간은 그의 막말 대잔치 시간이었다. 그는 약자들을 향한 혐오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장애인이 만든 음식을 누가 먹냐?’하며 동의를 구하질 않나, 특정지역이나 성별, 학벌에 대한 편견을 우리에게 확인하려 들었다. 내가 일했던 곳이 약자들을 지원하는 기관이었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나는 회의시간마다 맞은편 책장에 꽂힌 책들의 책등에 쓰인 글자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업무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중요한 논의나 결정은 ‘난 잘 모르니까, 전문가인 네가 해야지.’하고 떠넘겼다. 그는 오로지 돈을 얼마 쓰는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지출의 기준은 오로지 그만 알았다.
그는 어느 직급이든 상관없이 반말을 했고, 야 또는 너로 불리는 것이 그와의 친밀함을 얻는 영광이었다. 작은 기관에서 일을 하는 건지 놀러 오는 건지 모를 상사와 일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편안하고 안락한 직장"이었다. 그와 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했다. 다들 좋은 대학을 나왔고, 대화를 나눠보면 멀쩡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지만, 아무런 변화도 원하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들과 그리 친해지지 못했다.
나는 그 허술함을 이용해 내가 필요한 것은 거의 다 누렸다. 원하는 만큼 (그러나 ‘우리끼리의 상식’은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휴가를 썼고, 근무시간 내에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썼다. 담당하고 있던 프로젝트는 나의 뜻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의외로 ‘마음이 여린’ 그는 따지고 드는 나에겐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매 순간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것 자체로 자기혐오에 빠지곤했다.
내가 그 기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나에게 직접 전화해서 얘기한 사람이 있었다. “분명, 상처받을 텐데… 다시 생각해 보지?”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난 한국에서 적당히 편하게 일할 곳이 필요했고, ‘그 인간’만 잘 견디고 내가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백한 나의 오만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는 말하자면, "애는 착혀.."의 부류라서, 남한테 대놓고 가혹하게 할 수 있는 위인도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잘난 체하고 약아빠진 직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비난할 때, 나는 떳떳한가 하는 질책이 따라와 그때를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웠다. 결국 내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에마는 해리엇의 신분과 재산을 따져 자신이 사랑할리 없다고 항변하는 엘튼에게 분노하지만, 에마 역시 지체가 낮은 농사꾼이라는 이유로 해리엇을 사랑하는 마틴 씨의 청혼을 훼방 놓았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에게서 나의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모습을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더 큰 분노가 일었다. 나의 무능, 무식, 무지, 무례 또한 너무 잘 알기에. 마음 한쪽에 미뤄놓은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드디어 마주해 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손끝이 부들거릴 정도로 한 차례의 떨림이 지나갔다. 이제 조금은 그 쓰레기를 비워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