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핑계고

나태주, ‘혼자서’

by 나작


언젠가부터 넷플릭스 시리즈나 유튜브 콘텐츠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 ‘핑계고’를 찾아본다. 어릴 때부터 토크쇼를 좋아했었다. 이제 방송에서 토크쇼는 전멸해 버렸고,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의 유튜브 채널에서 각자의 분위기와 스타일로 ‘토크’를 하는 프로그램은 많아졌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 토크쇼를 좋아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 대화‘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날에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미국식 토크쇼를 좋아했었다. 그때의 토크쇼는 호스트와 게스트가 점잖게 차려입고 앉아 있고, 약간의 유머가 있으며, 쇼의 요소가 너무 많지 않았다. 대화에 집중된 토크쇼를 보면 나도 대화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할까 생각해 보면서.


요즘은 나도 미리 짜인 예스러운 토크쇼를 볼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누군가가 살아가는 이야기, 평소에 하는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방송은 여전히 보고 싶다. 넘치는 콘텐츠들 속에서 굳이 가끔 ‘핑계고’를 찾아보는 이유는, 모든 요소를 다 빼고 오로지 ‘토크’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진지했다가 웃겼다가 엉뚱했다가 주제가 오락가락해도 다 보고 나면 친구들이랑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난 것처럼 후련한 느낌도 든다.


오랜만에 어제 핑계고를 봤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파트 헬스장에서 간단히 운동을 하면서, 집에 돌아와 밥을 먹으면서 혼자서 큭큭거리고나니 나중엔 어쩐지 허전해졌다. 내 친구들은 다 어디 갔지. 내가 하는 고민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때는 주말마다 당연한 듯이 만나던 친구들 무리가 있었고, 진지하게 모여서 스터디를 하던 무리가 있었고, 밤새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하던 누군가가 있었는데, 나는 어쩐지 지금 혼자인 것만 같다. 이제는 오늘 내가 생각한 것을 그때의 사람들과 나눌 수 없다. 이제 서로가 밟고 있는 세계가 조금씩 달라져버렸으니까. 나의 목소리를 그들은 들을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의 목소리도 나에게 그렇다.


혼자서
나태주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 있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지금은 혼자서 서 있어야 하는 때인 것 같다. 외롭지만, 힘들어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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