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천안에 가기로 했다. 편안 옷차림으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에드가 앨런 포우의 <The Philosophy of Composition> 원문 강독 강의를 듣다가, 벌떡 일어났다. 며칠 안 되는 가을날씨를 집에서만 보낼 수 없었다. 천안에는 사촌들이 살았고, 서점이 있었다. 차로 한 시간 반정도 걸린다. 햇살이 좋았다. 혹시 몰라 단단히 껴입었지만 조금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
운전하는 동안 지윤&은환의 롱테이크를 들었다. 주제는 '매운맛 이야기'였다. 매운맛을 내는 고추와 후추이야기, 우리나라에서 매운맛을 즐기게 된 역사적 배경, 한국인의 매운맛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이 라면과 케데헌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진행자들은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찐 매운맛 러버들의 매운맛수다를 듣고 싶다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그들 사이에 난입하여 매운맛을 옹호하고 매운맛으로부터 오는 대체불가한 즐거움을 호소하고 싶었다.
청양고추를 맨손으로 다듬고 나서 화르르 불붙은 손을 기름에 된장에 얼음에 담가가며 하얗게 밤을 불태웠던 날이나, 불닭소스를 뿌리고 고추를 얹은 비빔면을 먹은 후 불타는 위장을 부여잡고 침대 위를 뒹굴던 날이 생각났다. 뜨거운 라오스의 한낮에 머리가 띵하게 매운 땀깔로니를 먹으며 견뎌낸 날들이나, 조계사 공양간에서 매운맛 비빔국수를 먹다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먹어야 했던 날, 임신기간과 수유기간에 매운 마라탕과 엽떡을 참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날들도 떠오른다. 매운맛의 고수를 가릴만한 엽떡도 지역마다 매운맛 편차가 얼마나 다른지, 내가 사는 지역의 엽떡은 오리지널도 맵지가 않다든지,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매운맛 에피소드가 자꾸만 생각나서 아무래도 매운맛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쓰윽 입맛을 다신다.
사촌들과는 엽떡을 자주 함께 먹었다. 생각보다 주변에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이기에 소중한 메이트였다. 다 같이 서울의 한 동네에 모여 살던 때에는. 천안에 도착해 사촌들과 점심을 먹고, 서점에 걸어가서 책 3권을 샀다. 그리고 헤어지며 말했다.
"다음엔 엽떡 먹으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