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지마 가족여행기
바다는 잔잔했다. 아직 아침 여덟 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도 햇살이 뜨거웠다. 구명조끼와 스노클링 장비, 돗자리와 타월, 모자와 신발, 선크림 등이 가득 차있는 캐리어를 들고 하얀 모래밭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물놀이 장비와 파라솔 자리를 대여하는 젊은 남자들이 텐트 아래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 걸어오는 동안, 신고 있던 샌들이 모래 투성이가 되었다. 여섯 살 난 딸은 벌써 뿔이 났다.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 거 싫어."
"원래 그런 거야."
나는 대충 대답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파라솔과 캠핑의자, 선베드로 구성된 자리들은 아직 많이 비어있었다. 우리는 일곱 명이었다. 남동생네 식구 네 명과 우리 식구 세 명. 벌써 훌쩍 큰 조카들은 미리 저 멀리 앞질러 가고 있었다. 아라구스쿠 해안은 거북이를 볼 수 있기로 유명했다. 입구에서 왼쪽 해안 끝으로 가야 거북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친절한 유튜버들과 블로거들 덕분에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앉을만한 적당한 자리를 고르고 값을 지불하는 동안 딸내미는 빈 캠핑용 의자에 앉아서 발에 달라붙어 있는 모래를 털었다. 어설픈 손놀림이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털어도 똑같아. 거기 우리 자리 아니니까 일어나자."
아이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아직 모래가 덕지덕지 묻은 신발을 도로 신었다. 우리는 거북이가 나온다는 해안가 가까이에 파라솔을 빌리기로 했다. 가방을 열고 짐을 주섬주섬 꺼냈다. 아직 오전이라 그림자가 기울어져 파라솔 안에는 그늘이 없었다. 그늘이 진 옆 빈 공간에 돗자리를 깔고, 장비들을 늘어놓았다.
어제 숙소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딸아이와 스노클링 연습을 했었다. 마스크를 쓰고, 스노클을 입에 물고 물속에 머리를 넣어 숨 쉬는 연습을 몇 번 하더니 재밌어했다. 물을 무서워해서 한국에서부터 바다에 절대로 안 들어갈 거라고 선언한 터였다. 아이는 상어가 나올 것 같아서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가면 자연히 따라 들어가겠거니 싶어서 나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고 장비를 갖춘 후 바다를 향해 다시 걸었다. 바다는 얕고 따뜻했다. 꽤 멀리 걸어가도 허리께에서 찰랑거렸다. 바닷속이 투명하게 비치고, 파도도 거의 없이 잔잔했다. 아이도 스노클을 입에 물고 바다로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얕은 곳에서는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서 조금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아이는 구명조끼 덕에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그러다 발이 닿지 않는 지점이 되자 겁을 먹었고, 내 허리를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손을 놓고 괜찮다는 것을 확인해 줘도 이미 겁에 질린 아이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동생네 식구들은 벌써 거북이가 보이는 지점까지 도착한 것 같았다. 아이가 아빠를 붙들기 시작했고, 나는 거북이를 향해 헤엄쳐갔다. 저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거북이를 보고 싶다는 욕망은 없었다. 거북이를 보고 싶어 한 것은 두 명의 조카들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들이었다. 그들을 위해 동생네 부부는 미야코지마섬행 티켓을 끊었고, 사촌오빠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딸을 위해 우리 부부는 그들을 따라왔다. 거북이가 출몰하는 지점은 거의 부드러운 모래바닥이었다. 아침 일찍 가야 거북이를 볼 수 있다길래 우리는 오전 아홉 시에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고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멀리서 딸내미의 징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네 식구는 이미 모여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조카들의 흥분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북이다!"
진짜 거북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흥분해서 거북이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거북이는 사람들 따위엔 관심도 없는 듯 입을 뻐끔거리며 모래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 먹고,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기도 하며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거북이를 보내고 두 번째 거북이를 만났을 때, 남편과 딸도 도착했다.
"이리 와! 여기 거북이 있어!"
바로 이것이 새벽 3시에 일어나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온 이유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딸아이는 더 큰 소리로 꽥꽥거리기 시작했는데, 이젠 거북이가 무섭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두 번째 거북이도 무심히 사라졌다. 나는 차라리 아이가 마스크와 스노클을 빼고 헤엄이나 치며 놀길 바랐지만, 왜인지 스노클을 입에 꼭 물고 절대로 빼지 않았다. 발이 닿지 않아서 불안한 것까지 더해져서 이젠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결국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조카들과 물고기들을 더 구경하다가, 아무래도 아이에게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아서 방향을 돌렸다. "산호초가 있는 데에 물고기들이 있어." 남동생이 귀띔해 줬다. 밝은 에메랄드빛 바다에 군데군데 짙은 색으로 얼룩진 곳이 산호초라고 했다. 방향을 돌려 가다가 산호초를 만났다. 모를 때는 돌덩이인 줄 알았는데, 널찍하게 펼쳐진 산호초였다. 창자처럼 우글쭈글하거나 융털처럼 불룩불룩한 모양에 처음엔 흠칫했지만, 다가가서 들여다보니 과연 색색의 열대어들이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새파란 빛을 내는 작은 열대어들이 우르르 지나가고, 노란빛을 내는 줄무늬 열대어, 반짝이는 비늘을 자랑하듯 눈앞을 쓱 지나가는 흰색 물고기, 검은색과 오묘한 빛의 다양한 물고기들이 산호초에 숲처럼 피어난 해초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다. 버섯처럼 펼쳐지고, 꽃무리처럼 봉긋하고, 리본처럼 구불구불한 해초들은 볼수록 신비로운 세계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작고 길쭉한 무언가가 구멍 속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몸을 숨기고 있던 작은 물고기가 살랑거리며 몸을 흔들기도 했다. 그 작은 마을 주변을 빙빙 돌며, 나는 한참을 떠 있었다. 물고기들은 나 역시도 바다생물의 하나인 것처럼, 나의 움직임도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자신의 일을 하고 제 갈 길을 따라 헤엄쳐 사라졌다. 나는 손을 뻗어 보았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는지 잡히지는 않았다.
파라솔로 돌아와 보니 아이는 모래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늘은 반쯤 파라솔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비치된 캠핑 의자에 앉아 출출한데 볶음우동이나 오코노미야끼 같은 걸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는 빙수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나는 가방을 뒤적여 지갑을 찾았다. 푸드트럭엔 안 되는 음식이 많았다. 두 조카와 딸이 얕은 물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동안 우리는 볶음우동과 오니기리를 먹었다. 하늘은 시종일관 새파랗다.
우리는 산호초가 더 많은 오른쪽 해안을 더 둘러본 후에, 다시 짐을 싸고 아이의 손을 잡고 해변을 빠져나왔다. 아이는 이번에도 발바닥의 모래 때문에 툴툴거린다.
"재미있었어?"
"응. 내일 또 올 거야. 내일은 수영은 안 하고 모래놀이만 할래."
나는 푸하하 웃었다. 다음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꼬박 하루가 지나 방치된 짐을 열어, 그날 신었던 아쿠아슈즈들을 꺼냈다. 아이의 신발 안쪽에서 아라구스쿠 해변의 모래들이 쏟아져나왔다. 따뜻한 모래 알갱이들이 신발 속에서 서걱서걱 밟히던 느낌, 파랗게 펼쳐진 하늘과 바다와 햇살의 평화로움, 귓속에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 크고 작은 산호초마을의 잔상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