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이사일지

이사 part I

by 나작

익숙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집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어제까지 ‘우리집’으로 불렸던 공간은 벽과 바닥을 모두 드러내고 멀뚱히 나를 맞는다.


현관 앞의 작은방부터 들어가 본다. 책상과 책장이 있던 방이다. 낮에는 내가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고, 밤에는 남편이 업무를 마무리했다. 아이에게는 금지된 보물창고 같은 방이었다. 아이는 내 책상 위에 놓인 메모장이나 마스킹 테이프를 탐내기도 하고, 남편 책상에서 초콜릿 같은 것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옆방은 어머님이 계시던 방이다. 처음엔 내 서재로 썼지만, 아이 장난감 방으로 꾸며주었다가, 아이의 할머니가 오시면서 할머니방이 되었다. 아이는 종종 ‘내 방’이 없어졌다고 투덜거렸지만 할머니와는 잘 지냈다. 나는 붙박이장을 하나하나 열어 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주방으로 가니 냉장고가 있던 공간이 뻥 뚫려 있고, 다 쓴 스티커 종이 하나가 나뒹군다. 커피머신, 전기밥솥, 식기세척기, 전기포트 등으로 빽빽하던 주방도 단출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바로 전날 아이가 집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며 온몸을 굴리던 거실도 이제는 모르는 척 데면데면하다. 안방도 말끔했다. 원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고요하다. 방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안방의 팔 할은 침대가 차지하고, 우리 세 식구는 매일 이 자리에 몸을 뉘이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다. 벽에 꼭꼬핀 하나가 남아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샀던, 마크라메 드림캐처가 걸렸던 자리다. 드레스룸과 화재대피소까지 둘러보고 나서 다시 되돌아 나온다. 생활이 사라진 공간에 낯선 발자국 소리만 텅텅 울렸다. 현관에 남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와 문을 닫았다.


연휴 끝에 이사가 있었다. 여러 군데가 꼬인 와중에 ’그나마 다행한’ 조건들이 맞물려서, 그럭저럭 정리된 이삿날이 연휴의 마지막날이었다. 열흘 전부터 나름대로 짐을 정리할 계획을 세웠다. 하루에 조금씩 해나가면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미리미리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음에도, 인간은 또 같은 길을 간다. 첫날에는 짐을 분류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둘째 날에는 중요한 서류나 귀중품을 따로 챙겨 두고, 책장의 잡동사니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셋째 날부터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게 흘러가더니 어영부영 명절을 보내고 이사하기 이틀 전에야 옷이며, 주방도구들이며, 창고와 화장실의 짐들을 뒤져 부랴부랴 짐을 정리해야 했다.


추석 다음날, 방마다 돌아다니며 버릴 물건들을 골랐다. 딸아이의 짐이 첫 번째 대상이다. 이제 더 이상 읽지 않는 유아용 책, 부품이 부서졌거나 잘 쓰지 않는 장난감들, 해지거나 작아진 옷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아이가 쫓아다니며 “내가 아끼는 건데”, “내가 열심히 만든 건데”, “내가 쓰려고 한 건데” 왜 버리냐며 쓰레기봉투를 뒤지며 꺼내오는 바람에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결국 아이를 친정집으로 추방한 후에야 아이가 만들고 그리고 잘라낸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두 마음 편히 처분할 수 있었다.


욕실에서는 언젠가 쓰려고 놔둔 샘플들, 다 쓴 비누조각들, 오래된 샤워타월, 한참 전에 사 두었던 방향제, 청소할 때 쓰려고 모아둔 다 쓴 칫솔들을 버리고, 서재에서는 언젠가 공부하려고 남겨둔 영어문제집, 쓰다 만 노트들, 여행지나 전시회 등에서 받아온 팸플릿들, 쓰지 않는 펜들을 모아 버렸다. 방마다 구석구석 방치된 물건들이 만만치 않았다. 벌써 10년이 넘은 토플문제집도 있었다! 버려진 물건들 속에 지난날의 꿈과 미련이 콕콕 박혀있다. 이사할 때가 되어야 버려지는 미련도 있는 법이다.


한 달간 살아야 할 짐도 따로 챙겼다. 이사날짜가 맞지 않아서 보관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세 식구가 한 달 동안 쓸 물건들을 따로 싸서 옮기는 일은 '또 다른 이사'였다. 계절이 바뀌는 기간이라 여름옷부터 초겨울 옷까지 챙겨야 했고, 크고작은 물건들을 챙기다 보니 끝이 없었다. 한 달간 머물 곳은 10분 거리에 있는 친정집이었다. 이삿날까지 사흘간 열 번은 물건을 실어 날랐던 것 같다. 정작 이삿날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사 업체에서 온 분들 사이에서 얼쩡거리다가 사다리차로 짐들이 내려지는 것을 한참 구경하다가 먼저 짐을 보관할 곳으로 이동했다.


짐을 보관할 곳은 우리가 운영하는 가게 옆 빈 공간이다. 열 평정도 되는 공간에 잡동사니들만 쌓여있는 방치된 공간이었다. 업체에 보관하면 가구나 전자제품이 상할 수도 있다고들 하고, 두 번의 이사비용을 지불하면서 보관비라도 아껴볼 참으로 이 공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짐은 5톤 트럭과 1톤 트럭에 한가득 실려 왔다. 작은집에 고작 세 사람이 사는 집에도 이렇게 많은 짐을 지니고 살다니, 새삼 고된 인간사다.


이사업체에서 온 인부들은 내가 준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는 짐을 내려 다시 차곡차곡 쌓았다. 나는 혹시 공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점점 자리가 채워질수록 수시로 트럭에 남은 짐들과 남은 공간을 번갈아 봐야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인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빈틈없이 테트리스를 쌓고 나니 통로자리의 여유마저 있었다.


짐을 내리는 것은 훨씬 금방 끝났다. 견적을 받은 다른 업체보다 50만 원 이상 저렴한 곳이긴 했지만, 내심 박스들을 풀어서 제자리에 정리해 주는 것도 아닌데 하루치 이사비용을 다 받는 건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이사비용은 좀 깎아달라고 말할까 잠시 고민했는데, 땀에 잔뜩 젖은 채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잔금을 송금하고, 드디어 이사 part I이 마무리되었다.


내 인생은 숱한 이사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사를 ‘제대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사업체가 가구와 짐을 포장해서 사다리차에 실어 5톤 트럭으로 나르는 정도의 규모 있는 이사 말이다. 어린 시절의 이사는 부모님 몫이었고, 이후의 이사라고 해봐야 짐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이동’ 수준이었다. 아이를 낳고, 이 동네에 집을 얻고, 냉장고와 가구들을 사면서,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던 우리 부부는 이 무거운 짐들과 함께 아직 한국에 남아 있다. 아이 셋을 낳으면 날아가지 못하는 선녀처럼, 냉장고와 침대를 샀으면 이제 못 나간다고,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었다. 잠시 지내다 갈 줄 알았던 이곳에서, 결국 4년이나 살았다.


"이제 이사 가요?" 매일 아침 마주치던 청소하는 아주머니다.

"네, 어제 짐 빼고 오늘 정리하러 왔어요."

"할머니랑 애기랑도 오가면서 정들었는데... 이사 가서 잘 살아요."

나는 감사하다고, 잘 지내시라고 인사했다.


이사 후에 조금 남은 쓰레기를 마저 버리고, 관리사무소로 가서 주차스티커를 반납하고 관리비를 정산했다. 아직은 "우리집" 같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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