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해야 할 마지막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집을 떠나는 일을 며칠 앞두고는 그것이 여행이든 다른 일이든 늘 귀찮게 여겨진다. 가방 꾸리는 일이 그렇다. 막상 길을 나서면 금세 마음이 설레면서도 2~3일 전부터는 괜히 가기 싫어진다.
그중에 제일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것이 나의 껌딱지 고양이이다. 밥 주고, 똥 치우고, 놀아주고, 같이 자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몽땅 맡기고 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매일 앞에서 알짱대는 녀석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다 큰 아들이야 제 할 일 제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구나 워낙 무심한 녀석이라 나의 부재에 대한 느낌도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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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영화 본 지도 오래되어 모처럼 일요일 오후 영화관에 갔다. 집에서 걸어 10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어 산책하듯 가볍게 나설 수 있어 참 편리하다. 영화와 커피는 언제나 아들과 분담한다. 주로 영화는 내가 내고, 커피는 아들이 산다. 그날도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각각 커피를 들고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일부터 엄마 교육이야. 잘 지내고 있어. 고양이랑 싸우지 말고 잘 돌봐줘"
"네. 걱정 마세요. 언제 오세요?"
"목요일 오후에 올 거야"
"무슨 교육을 그렇게 자주 가세요?"
"왜? 엄마가 교육을 자주 가서 싫어?"
"좀 그렇죠"
"좀 어떤? 엄마가 없는 것에 대해 너도 무슨 느낌이 있어?"
"당연히 있죠"
"무슨 느낌인데?"
"좀 허전하죠"
아들로부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내가 집을 비워도 전혀 개의치 않을 거라는 것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아들의 대답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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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원룸 생활 2년을 접고 집에 들어오던 날, 이삿짐을 옮기면서도 조만간 다시 독립할 거라던 아들이라 준 독립(?)에 비견하는 나의 부재가 오히려 녀석이 쌍수 들고 환영할 줄 알았다. 그러던 녀석인데 나의 부재에서 허전함을 느낀다는 표현이 참으로 낯설고 생소했다.
"엄마가 없으면 아침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불편한 거지 그걸 허전한 걸로 착각한 거 아냐?"
"아니에요. 사람이 있다가 없으니까 뭔가 휑한 게 이상하더라고요"
"그런 걸 알아?"
"아~~~ 알죠. 그걸 왜 몰라요?"
"아들 심장은 돌로 만들어져서 엄마는 아들이 그런 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하하하하하"
녀석도 가끔 맞이하는 나의 부재가 손 가시처럼 걸리긴 하나보다. 굳이 재재거리지 않고 각자 제 할 일을 하고 있어도 한 공간에 함께 머물고 있다는 것이 녀석도 나도, 마음 한 켠에 중심을 잡아주는 추 하나를 달고 있는 것 같았나 보다.
이따금 녀석이 출장을 가느라 며칠 집을 비우면 그 빈자리의 울림에 흔들리기 싫어서 나도 일부러 내 일에 더 몰입했었는데 녀석도 그 비슷한 감정이 들었었나 보다. 설령 그것이 완벽한 허전함이 아니라 어쩌면 불편함에서 기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덤덤한 녀석의 돌멩이 같은 심장과 나는 야트막한 돌담처럼 서로 얼기설기 기대고 받치고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