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카르타로 오는 여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기도 했지만 출발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더 그런 것 같다. 새벽비를 뚫고 나와 먹은 거라곤 공항에서 마신 커피 한 잔과 부실한 기내식 한 끼가 전부였다.
밤늦게 자카르타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이었지만 밥 먹는 것도 귀찮아 등에 가서 붙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었다.
너무 먹은 게 없어서인지 다음 날 아침 동네를 한 바퀴 걷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조식은 잘 먹어야지 했는데 메뉴가 심하게 심플해서 먹을 게 없다. 하는 수 없이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닭조림 두 조각을 경건한(?) 마음으로 먹었다. 어쨌든 어깨 약도 먹어야 하고 반나절을 버텨야 하니 찬 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반둥으로 가기 위해 감비르역으로 향했다. 여행할 때마다 화려한 도시보다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나 특색을 접하는 것을 좋아해서 자카르타는 겨우 몇 시간 잠만 자고 튀어 나가기로 했다.
역에 도착하니 시간 여유가 있어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해외의 낯선 곳을 혼자 다닐 때마다 스타벅스의 초록 다시마(?) 머리의 여인이 왠지 친구처럼 반갑다. 그 얼굴이 낯선 곳에서 내게 가장 익숙한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KTX 타는 건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남의 나라에 와서는 어린아이처럼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물어보게 된다. 여차해서 놓치거나 어그러지면 다시 표를 구할 수도 없고, 일정도 뒤틀리기 때문이다.
다들 친절하게 알려준 덕에 무사히 반둥으로 가는 열차를 찾아서 앉았다. 열차 좌석별로 가격이 몇 개로 나눠져 있지만 제일 비싼 좌석을 예매했다. 머리 위의 선반 외에 한국처럼 캐리어를 두는 별도의 공간이 없어 내가 앉는 좌석에 함께 데리고 타야 하기 때문이다.
짐꾼(?)처럼 힘을 쓸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선반에 거뜬히 올릴 수 있는 정도의 캐리어이지만, 혼행을 선택한 내게는 이조차도 이민가방만큼이나 버겁다. 양손에 떡을 다 쥘 수 없으니 그것은 각자 선택의 영역인 것 같다.
열차 좌석은 많이 넓어서 캐리어를 두고도 여유가 있다. 걱정했던 게 잘 해결되어서인지 마음도 훨씬 편안해지고, 목의 임파선도 성질이 조금 누그러진 듯하다.
반둥으로 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자꾸 나를 유혹한다. 나도 망설이지 않고 그 안으로 풍덩 빠져들 준비를 마쳤다.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는 반둥에 사뭇 기대가 된다. 언제 해봤는지 기억에도 없는 까마득한 데이트를 위해 길을 나서는 기분이 이런 걸까? 몇 시간 후에 만나게 될 새로운 데이트 상대에 나는 늙은 줄도 모르고 주책맞게 이제야 자꾸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