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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행, 다른 출발......

by 파란 해밀


몇 달 전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놓고 언제 이날이 올까 싶더니 출국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쉬엄쉬엄 생각날 때마다 짐을 꾸렸는데도 며칠 임박해서는 괜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머리를 자르지 못할 것 같아 군 입대해도 될 것 같이 쇼트커트로 하고, 고양이 밥그릇도 자율 배식대로 바꾸었다.

그 외에 내가 손을 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손을 보았는데도 한 달이라는 기간은 예전에 갔던 몇 주의 여행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짐을 꾸리는데 약봉지가 그득하다. 그동안 고가(?)의 주사 치료를 한 덕에 끈질기게 괴롭히던 어깨가 많이 좋아졌지만, 혹시나 외국에서 고생할까 봐 챙겨가는 2주분의 두둑한 약봉지가 참으로 낯설다.

며칠 전부터 부어오른 목의 임파선과 난데없이 한쪽 무릎이 말썽이라 부랴부랴 병원을 다녀오고, 금요일까지 꼭 낫게 해 달라고 의사에게 생떼를 쓰다시피 했다.



© americangreentravel, 출처 Unsplash



이리저리 몸 컨디션이 말썽이라 웬만큼 짐을 다 꾸리고도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온 사람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가보지 않은 곳을 혼자 나설 때마다 언제나 긴장되고 두렵다. 나서지 않으면 안정되고 편안할 텐데 굳이 그 길을 택하는 것은 돌아왔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크기 때문이다. 처음에 여행은 그저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수없이 던져지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든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 오로지 내 몫이듯, 낯선 곳에서 오롯이 혼자 방황하고, 부딪히고, 결정하고, 해결하며 내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사히 해결하고 났을 때 나는 행복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는 언제나 두려우면서도 마약 같은 그 맛에 낯선 길을 자꾸 나서는 건지 모르겠다.



© timtrad, 출처 Unsplash



백수가 된 기념으로 처음 떠나보는 한 달 여정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남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모든 여행이 그랬듯이 내 가슴 언저리 어딘가에 꼭꼭 다져지리라 기대하며 마무리 짐 정리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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