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에서 3일째 되는 날은 어제 버스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추천해 준 Saung Angklung Udjo에 가기로 했다. 고젝으로 부른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입구에 도착했는데 오토바이 기사가 갈아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른 오토바이 기사도 옆에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몰라 내가 왜 갈아타야 하냐고 꿈쩍도 안 하고 있으니 그냥 가라고 한다.
몇 년 전에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나를 다른 차로 토스하려고 했던 운전기사가 생각나서 이번에는 오토바이 기사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있었다. 우리도 외국 사람과 말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통과시키듯이 말이 안 통해서 그런지 타고 온 오토바이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돌아갈 때야 그 의문이 풀렸다. 그 구역은 그랩이나 고젝의 차량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부터는 그 마을의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그것도 모르고 영어로 따지고 들었더니 말이 안 통해서 그냥 보내준 것 같다.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 120,000루피아를 지불했다. 공연은 10시부터 시작이라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까막눈이라 티켓 매표소에 있는 직원에게 이곳에 관해 물어보았다.
아주 유창한 영어는 아니지만 직원이 열심히 설명을 해주어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공연장 옆에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Angklung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Angklung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유래한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데 각각 다른 음을 낼 수 있다. 보기에는 대나무 조각을 이어 붙인 그저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소리가 참 맑고 예쁘다.
공연 마지막에는 관객들에게 악기를 나누어주고 진행자가 이끄는 대로 연주를 하니 금방 멋들어진 팝송이 만들어졌다.
관객이 많은 날은 600명 정도까지 수용가능한데 그날은 개별적으로 온 몇몇 성인들을 제외하고는 학생들 단체가 대부분이었다.
학생들 뒤로 공연이 제일 잘 보일 것 같아 정중앙에 혼자 앉아 있으니 어린 학생들이 내가 신기한지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돌아가면서 쳐다보았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아이들도 금방 환하게 웃으며 작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까무잡잡한 얼굴 보다 더 까만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공연 시간이 되자 시작 전에 미리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던 여성 사회자가 진행을 아주 매끄럽게 이끌었다.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 밖에 없는데 영어로 설명을 잘해주었다.
어디서 왔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갑자기 자리에 앉아있던 학생들 모두가 일제히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낯선 곳에서 누가 나를 이토록 격하게 반겨줄까 싶어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녀는 진행 중에도 마치 제 식구 챙기듯이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간간이 질문도 하며 내가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공연은 인형극을 시작으로 다양한 춤과 노래로 이어졌다. 처음 보는 색다른 공연이다 보니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고 끝이 났다.
가까이서 본 여성 사회자는 아직도 앳돼 보이는데 그동안의 근무경력이 꽤 되었는지 진행을 아주 세련되게 이끌었다.
공연 전에 몇 마디 나누어 보았을 때도 그녀는 매우 사교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그곳을 떠나고 나서도 공연만큼이나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람의 이미지나 에너지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공연이 끝나고 자리 정리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옆에 있던 일행이 갑자기 나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으니 딱해 보여서 그랬는지 약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것도 여행의 맛이지 않을까 싶어 선뜻 사진을 찍었다.
연로한 자매들이 개인 간호사까지 대동하고 왔는데 그중의 한 분은 유달리 활달해서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인도네시아의 좋은 여행지도 알려주었다.
출구로 나와 오토바이를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는 도착했다는 문자를 자꾸 보내는데 도무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옆에 있는 아저씨가 짧은 영어로 이 안까지 고젝 기사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제야 올 때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반둥 시내로 가는 값이나 거의 비슷한 금액을 주고 마을 입구까지 나가야 했다. 거리로 치면 겨우 100미터 남짓한 거리인데 그랩이나 고젝이 여행자에게는 편리하고 좋은데 경쟁업체들에게는 어딜 가나 미운털이 박힌 것 같다.
고젝 기사가 어디 있는지 몰라하자 나를 태우고 온 로컬기사가 내가 있는 위치를 고젝 기사에게 문자를 보내주어 무사히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이 다들 순박하고 친절하다. 통하지 않는 언어는 그다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한국 문화센터가 반둥에 있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갔더니 그곳은 폐쇄를 하고 다른 용도로 쓰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은 어떻게 전시되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아쉬움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아침부터 곧장 공연장으로 가는 바람에 건너뛴 커피를 마시러 전에 갔었던 스타벅스로 갔다. 오후라 그런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들어차 있다.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또 천둥, 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도로에 구멍이라도 낼 것처럼 세차게 비가 내리 꽂히는데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잠시 후에 뻔뻔하게 갠 하늘이 나올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도 반둥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