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이 있는 박하 시장

베트남 북부 이색 시장

by 파란 해밀


2019. 05. 05 베트남 박하 시장



우연히 알게 된 베트남 북부에 있는 사파 여행을 계획하면서 박하 시장도 알게 되었다. 고산족 여인들이 만든 물건들을 직접 가지고 와서 판다는 이색 시장인데 꼭 가 보고 싶었다. 이번 여행은 1주일간 모두 사파에만 머물면서 여유롭게 둘러 보기로 했다.



박하 시장은 평일은 서지 않고 일요일에만 여는 장이라 이번 여행 일정을 잡을 때 박하 시장 중심으로 계획을 했다. 한국에서 베트남 여행사를 통해 미리 박하 시장 투어를 신청할 수 있어서 예약을 하고 갔다. 투어 전날 반드시 사파에 있는 사람들만 신청이 가능했다.



사파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일찍 박하 시장을 향했다. 사파 바로 옆동네쯤 있을 줄 알았는데 차로 세 시간가량 달린 것 같다. 가는 길에는 차창 밖으로 사람이 손대지 않은 자연이 본디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어 차 안에서 눈으로 스치기만 해도 마냥 좋다. 한국이라면 벌써 수많은 숙박 업소나 식당들이 앞다투어 들어섰을 텐데 황홀한 자연 전망들이 아직 그대로 살아 있다.



구불구불 산 길을 돌고 돌아가는 중에 차 안에서 가이드는 작은 개울을 가리키며 저 건너편은 중국이라고 일러준다. 작은 시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베트남은 그렇게 가까이 마주하고 있었다. 어디든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생소하고 신기하고 언제나 이런 상황이 선뜻 수용되지 않는다. 갑자기 개울을 보니 바짓가랑이 동동 걷고 밀입국(?)을 하고 싶다는 이상야릇한 충동이 솟구친다^^.



라오까이를 지나서도 조금 더 들어 가 작은 시장 앞에 차를 세워주었다.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몇 시간의 자유시간 동안 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장은 작다. 정오를 막 넘어섰는데 벌써부터 시장은 물건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으로 복작거린다. 고산족들만 모이는 특별한 곳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반 재래시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과 함께 의외로 싱싱한 생화를 많이 팔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장식용으로 파는 것 같지는 않은데 다른 행사용인지는 몰라도 꽤 많은 사람들이 꽃을 팔고 있다.


허름하고 정신없는 시장에서 화사한 꽃 아름이 단연코 돋보인다. 주변 청과물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유난히 선명해서 자꾸 시선을 끌지만 시장을 떠날 때까지 그 궁금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새끼 오리들도 주인 손에 이끌려 나와 대바구니에 단체로 담겨있다. 얼마 만에 보는 건가?....... 문득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생각이 난다. 삐약거리는 노란 병아리가 너무 예뻐서 두어 마리 사가면

"이런 걸 왜 사 왔어?"
하고 구박을 듣거나 얼마 못가 죽어버리곤 해서 괜히 마음만 상했다. 똘망똘망해 보이는 이 새끼 오리들은 누구한테 가든 튼실하게 잘 크기를 바라본다. 작아도 울음소리가 꽤 우렁차다.



전망 좋은 물가에는 야외 미용실이 있다. 차려놓은 자리에는 머리를 깎는 손님도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 생소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시장 노변에서 면도나 미용을 하는 것이 꽤 불편할 것 같은데 미용사나 손님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고, 일을 한다.


손님이 없는 미용실도 있지만 바닥에 떨어진 수북한 머리카락이 그래도 영 공친 건 아닌 것 같다. 발 밑에 깔린 머리카락 양으로 그 날 수입을 어림짐작 할 수 있지 않을 것 같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탕수수를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곳이 더러 있다. 현지인들이 많이 모이는 코너이기도 하다. 신기한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먹어보고는 싶은데 한 토막만 팔 것 같지 않아 눈만 끔뻑거리며 계속 쳐다보았다. 그런 내 마음을 용케도 알아차리고 사탕수수 파는 총각이 낫으로 거칠게 다듬은 사탕수수 한 조각을 먹어보라고 건네준다.

돈을 주고 꼭 사 먹을 만큼은 아니라서 그 총각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니 이 조차 알아듣고는 베트남어로 뭐라 뭐라 하며 아까 그 사탕수수 조각을 다시 건네는 시늉을 한다. 보아하니 돈을 받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아서 넙죽 받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난생처음으로 사탕수수를 씹어보았다. 거친 수숫대를 씹으면 달달한 즙이 나온다. 수숫대의 질감이 그렇게 친숙한 맛은 아닌 것 같다. 공장에서 잘 다듬어진 단맛에 길들여져서인지 거친 사탕수수 맛이 나한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맛을 보라고 건네준 총각한테 미안해서 먹다 남긴 사탕수수를 손에 들고 그 자리를 떴다. 한참 돌아 나와 그 총각이 안 보일 즈음 어딘가에 사탕수수 토막을 버렸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베트남 고유 복장을 하고 물건을 사라는 여인네들이 더러 있다. 실제로 고산족 여인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 없지만, 볼 때마다 물건을 사라고 너무 집요하게 권해서 그들을 마주치는 게 다소 부담스럽다.



한낮의 햇빛이 제법 뜨겁다. 시장을 돌다 보면 그늘 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더위도 피할 겸 그늘이 있는 길거리 카페에 들어가 냉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앉았다. 냉장고도 없을 것 같은 길다방에서 어떻게 보관하고 있었는지 작은 얼음을 커피에 동동 띄워준다. 얼음이 녹을 때까지 그늘 안에서 땀을 식히며 눈으로 시장을 둘러보았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은 아낙의 화려한 복장 색상이 묘하게 조화롭다. 겹겹이 껴입은 옷이 덥지는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한술 더 떠 검은색 스타킹이 숨을 턱 하고 막는다. 그래도 걸을 때마다 나폴거리는 폴리 소재 스커트가 손부채처럼 가볍게 흔들려서 그나마 좀 괜찮을까? 하고 위로를 한다.


사람이란 어차피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기 마련인데 또 주책맞은 오지랖이 날뛰며 오작동을 한다.



날씨가 더웠거나 말았거나 언제, 어디서나 시장은 활기차 보인다. 시장을 돌다 보니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으면 값싸고 싱싱한 야채 한 보퉁이를 사다가 밥 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주부로 너무 오래 살아서일까? 뼈속 깊이 박힌 주부 근성이 외국을 나가서도 어쩌지 못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바닥에 알록달록한 베트남 의상을 잔뜩 깔아놓고 파는 곳이 눈에 띈다. 급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보았는데 화학섬유로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옷들이다. 혹시나 직접 손으로 만든 물건들인가 했는데 그저 그런 공산품들이다.



이 곳 박하 시장도 편리한 문명에 자리를 내어준 지 이미 오래된 것 같다. 많은 기대를 하고 온 것에 대한 실망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공장 물건들이 판을 치고, 나처럼 기대를 가지고 온 외국인들이 잠시 혹 할지 모르지만, 그조차도 금방 들통나고 마는 그냥 상업적인 시장이었다.

같이 투어를 했던 베트남 아가씨가 요즘 이런 곳에도 중국산 물건들이 많다고 귀띔을 해준다. 세계로 뻗어가는 중국의 문어발 위상(?)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 복닥이고, 사람 냄새나는 시장을 둘러보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박하 시장이다. 나는 편하고 편리한 것을 쫓으면서 그들에게 불편과 전통만을 고수하고 지키길 바라는 것도 나의 터무니없는 이기심일 것이다.



멀리서 보니 목공예 작품을 전시해 놓고 있는 것이 보었다. 이런 재래시장에서 저런 목공예 작품도 파는구나 싶어 후다닥 달려갔다.

가까이 와서 보니 그것은 목공예 작품이 아니라 쟁기 같은 농기구였다. 철딱서니 없는 생각의 차이를 느끼며 옆에 서 있는 아저씨가 내가 황급히 쫓아온 이유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어느 나라든, 재래시장은 사람 냄새가 나서 구경하는 걸 좋아하다.


한국에서도 신랑과 재래시장을 간간히 찾는다. 좌판에서 할머니가 파는 떡 한 봉지나 군밤 한 봉지를 사서 손에 들려주면 남편은 엄마 따라나선 아이처럼 좋아라 한다. 그래서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혼자 다녀오라고 해도 "시장 갈래요?" 하면 군말은 고사하고 한 가랑이 두 다리 끼고 앞장선다.



비록 박하 시장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큰 기대만 접으면 가히 나쁘지 않다. 시장의 활기 속에 사람 사는 고단한 땀냄새도 배어 있지만 사람한테서 느끼는 따뜻한 정도 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마다 자꾸 재래시장을 찾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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