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쇼우와 함께

깟깟빌리지를 걷다

by 파란 해밀


2019. 05. 07. 쇼우와 깟깟빌리지에서


오전에 쇼우를 만나기로 했다. 어제 트래킹에서 우리를 따라 온 고산족 행상 중 가장 나이 어린 아낙이다. 아이가 둘인 엄마이지만 21살 나이는 어쩌지 못하고 티가 난다. 수줍은 미소가 유난히 예쁜 쇼우다.

오늘은 만나서 깟깟빌리지를 함께 가기로했다. 점심을 포함한 하루 투어 비용만큼 주겠다고 제시했을 때 그녀는 무척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영어를 가이드처럼 하지 못해서 본인은 아무런 설명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사파 트래킹 투어를 맡았던 가이드 몇 년차가 옆에서 한다고 하라는 눈짓을 쇼우에게 보내는 것 같았다. 설명 따위는 아무 필요 없으니까 걱정 안해도 되고, 길 안내만 해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시각에 메인 광장으로 나가보니 쇼우가 기다리고 있다. 늘 행상으로 사람들을 따라다니기만 하다가 설명은 필요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일은 처음 해보는지 그녀는 조금 긴장하는 것 같다.

그녀를 따라 걸어서 깟깟빌리지로 향했다. 생각보다 멀지 않아 숙소에서 걸어가기 좋은 거리다. 길동무가 있어 나도 든든하다. 깟깟빌리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사야 한다. 들어서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좁다란 길이 재미있게 이어져 있다.


고개 들어 건너편을 바라보면 소담한 동네는 지난 밤의 안개를 다 벗지 못하고 머리 위에 그득히 이고 있다. 모내기를 준비하는지 물을 받아 놓은 논도 있다. 오랜만에 보는 시골 정취에 가슴이 설렌다.

힘든 농사일이 내 일이 아니니 스치듯 구경하는 여행객 눈에는 그저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산 굽이마다 빼곡한 다랑이논에 모를 심을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일까 싶다. 걱정이 팔자라서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특별한 루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빤히 보이는 길을 따라 가면 되고, 큰 길에서 비껴난 샛길이 나오면 그 길로 들어가 둘러보면 된다. 쇼우와 함께 아무렇게나 걸어 다녔다. 간간히 바닥이 미끄러운 곳이 나오면 그녀는 조심하라는 손짓을 조심스럽게 보내준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쇼우의 몸짓이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자연스러워진다. 긴 말은 할 수 없고 고작 해봐야 단어 하나, 손짓 하나로 소통해야 하지만 굳이 설명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서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어제했던 트래킹처럼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곳인가 했는데 작은 동네라 두세 시간이면 너끈히 볼 수 있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면 작은 시내가 있고 빙 둘러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인공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 곳이다.

다만, 가는 중에 들른 작은 카페나 바틱제품이 좋다. 특히, 호치민에서 함께 미술공부를 한 부부가 이곳에서 천연염색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있는데, 가격은 다른 데 비해 비싸지만 남자 주인장이 직접 그린 패턴으로 만든 것들이 상당히 매력이 있어서 다음 날 일부러 한 번 더 그 상점에 들렀다.



개울가 근처에는 이곳을 찾는 여행객을 위한 포토존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해먹이 있다. 쇼우와 함께 한 컷씩 남겼는데 해맑게 웃는 쇼우의 미소가 영락없이 아이 같다.

웬만큼 둘러보고 다시 메인광장으로 나오기 위해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격 흥정을 하는데 쇼우가 나서서 현지인 가격을 제시하자 오토바이 총각이 쇼우를 흘끔 쳐다보고는 어쩌지 못하고 오케이 한다. 쇼우 덕을 보았다.



숙소 근처에 와서 내가 자주 갔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시켰다. 밥을 먹는 동안 구글을 통역사로 끼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꽃 같은 17세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으며, 남편은 동네에서 오토바이를 몬다. 그리고 쇼우는 일 주일에 세 번정도 트래킹에 따라 나선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봐 주신다. 가이드를 할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영어를 잘 못해서 할 수 없다고 한다. 혼자 영어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에서 혼자 하는 나도 쉽지 않은데 여러가지 여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그녀가 독학으로 공부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의지를 갉아먹는 게으름이 문제지만, 그녀는 나와 견줄 수 없는 문제라 그 상황은 다르지만 어렵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약속한 금액을 건네고 식당을 나섰다. 고산족이 살고 있는 쇼우네 집을 둘러 보고 싶었으나 그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면 불편해할까 봐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거절하더라도 한 번 말이나 해볼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고마웠어"

라는 말과 함께 메인 광장에서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몇 발자국 안 가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든다. 그녀의 눈빛이 다 하지 못한 말이 담긴 듯 하다. 나도 제자리에 서 있다가 손을 흔들었다. 뭔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에 찡하고 퍼진다. 내일을 약속하지 않은 후회가 들썩인다. 저 앞에 걸어가는 그녀를 다시 불러 세울까? 하는 생각도 자꾸 나댄다.

'...................'

걸을 때마다 삼단 같은 그녀의 긴 머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쇼우가 예쁜 미소와 더불어 예쁘게 살기를 바라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챙겨 나도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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