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힐까지
2019. 12. 14. 탄하 도자기 마을에서 바나힐까지
호이안의 둘째 날은 바나힐을 계획했다. 후배는 여러 차례 가족과 다낭을 다녀갔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이동이 쉽지 않아 바나힐을 못 가봤다고 한다.
혼자 왔으면 절대 가지 않을 곳이지만 아끼는 후배의 희망사항이라 함께 가기로 했다. 모처럼 놀이동산에 가는 기분을 기대했다. 우기이지만 어제 날씨가 너무 좋아서 비 올 확률 50%를 주장하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어제처럼 화창한 날씨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 바나힐을 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어 핵 비추라는 얘기가 있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계획을 바꾸었다.
올드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탄하 도자기 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 약 30분 정도 거리였다. 동네 구경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가기로 했다. 강을 끼고 걸어가는 길도 재미 삼아 나쁘지 않다.
도착해보니 이 곳도 작은 마을인데 들어가는데 입장료가 있다. 1인당 6만 동(한화 3천 원)으로 가다 보면 마지막 장소에서 선물을 준다고 한다. 매표를 하는 곳을 시작으로 빙 둘러보는 작은 도자기 마을이다.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짬이 되면 늘 배우고 싶어 했던 터라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섰다. 할 수 있으면 체험도 해보고 싶었다.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토기들이 즐비하다. 주로 일반 점토를 사용한 소품, 장식용품과 생활용기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생각했던 도자기가 아니라서 실망하고는 체험해 볼 생각도 쑥 들어갔다. 단체 투어로 온 사람들은 그룹으로 앉아 설명을 듣거나 체험하는 모습도 더러 보인다.
굳이 도자기가 아니더라도 작은 골목 사이사이를 걸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베트남의 작은 동네 골목을 산책해 본다는 생각으로 다녀보니 그것도 할 만하다. 생뚱맞은 민트색이 튀는 듯하면서도 뒤를 돌아보게 한다.
부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자꾸 끌리는 것은 또 무언지...... 그림을 그릴 때 나도 저 민트처럼 강렬하면서도 결국에는 주변으로 잦아드는 색을 칠할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동네 한 바퀴는 금방 끝이 난다. 들어갔던 시작점이었던 붉은 도자기 박물관이 보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선물을 받기로 한 지점을 놓치고 왔다. 선물에 혹해서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기로 했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골목길에서 지도만 들고 선물가게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골목에 있는 현지인에게 물어보고, 가게에서 또 물어보고 한 끝에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작은 고구마를 삶아 놓은 것 같이 보인다.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12가지 띠별로 동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선물은 자신이 원하는 띠의 동물을 고르라고 한다. 자신의 띠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생년에 해당하는 동물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호랑이를 하나 받았지만 그다지 정교하거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굳이 포장까지 해서 건네주는 점원의 성의가 고마워서 가방에 넣고 나왔다.
돌아 나오는 길에 몰딩으로 본뜨는 작업을 하는 곳도 있다. 흙을 다듬는 청년의 눈빛이 진지해서 나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돌아 나오니 하늘이 제법 맑아졌다. 취소했던 바나힐에 대한 미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댓바람에 차를 불러 바나힐로 향했다. 보통 호이안에서 그랩으로 1백만 동이 나오는데 안방 비치에 갈 때 알았던 기사를 통해 80만 동에 가기로 했다.
호이안에서 바나힐을 오는 동안 하늘은 울까 말까 하는 어린아이처럼 표정이 변화무쌍했다. 구름이 잔뜩 끼었다가 햇빛이 쨍하고 났다가 사람 마음을 아주 가지고 논다. 먹구름이 끼인 곳에서는 다시 호이안으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바나힐 입장권을 인터넷으로 발권한 터라 하는 수 없이 마음 편히 가기로 했다.
약간 흐리기는 했지만 바나힐 입구에서는 그래도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흐린 중에도 우리처럼 바나힐을 찾은 사람들이 있어 동지의식을 느끼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매우 긍정적인 생각과 요행을 바라며 씩씩하게 들어갔다.
혹시라도 더 나빠질 날씨를 생각해서 골든브릿지부터 먼저 가기 위해 호이안 역으로 향했다. 케이블카가 여러 방면으로 나누어져 정상으로 향하는데 그중에 호이안 역이 골든브릿지로 향하는 곳이다. 역에 정차하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아연실색했다. 금방이라도 한바탕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아 우의를 사 입고 일단 골든브릿지로 나갔다.
멀리서 온 손님을 이렇게 맞아도 되나? 싶은 괘씸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날씨도 어이없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도 참 어이없다.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어제는 날씨가 쨍해서 엄청 좋았다는데 하루 사이에 변덕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그래도 어제 왔었다면 사람들에 밀려서 다녔겠지...... 하며 억지로 위로를 해본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겠지..... 하며 새로 산 우비 자랑을 해본다. 그래도 그 덕에 바나힐 추위를 면할 수 있었다. 5천 원짜리 우비치곤 제법 튼튼해서 다음 여행에도 입을 수 있겠는데 무게가 제법 나가는 게 흠이다.
우리 둘 사이에 놓인 돌 받침이 너무 길어서 더 이상의 진한 애정표현이 안된다. 벌써 많은 이들이 비볐는지 코 끝에는 돌조각이 닳아 허연 속살이 보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다 가는 길에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루지를 타고 싶다는 후배의 청에 루지 타는 곳을 찾아갔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안내소에서 루지 타는 곳을 물으니 날씨 때문에 운행을 안 한다고 한다. 후배에게 그냥 한국 가서 타라고 했다. 우리가 포기한 것은 루지뿐이 아니었다. 모든 탈 것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탈 것은 고사하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포기해야 했다. 흐린 날은 그저 바나힐에 왔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의 바나힐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니는 내내 헛웃음만 날리고 다녔다. 여행에서도 선택과 집중, 그리고 단호한 포기가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여행도 인생의 축소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