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5. 다낭에서
이번 여행은 함께 간 후배가 다낭을 여러 차례 다녀간 터라 그녀가 하는 대로 편하게 따라다니며 내 팔자에 이런 호사가 다 있나 싶다. 호이안에서 3일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 일찍 체크 아웃을 하고 다낭으로 넘어왔다.
도착해서 일요일 오전 반나절을 한 마켓 근처를 돌아보았다. 점심도 후배가 유명하다는 식당을 검색해서 근처에 있는 맛집이라는 곳으로 갔다. 시끌벅적한 식당 안에서도 한국말이 또렷이 들린다. 순간, 이 곳이 한국인가? 베트남인가? 할 정도로 헷갈린다. 둘러보니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다. 아마도 후배가 한 검색하듯 그들도 그렇게 알아보고 찾아온 것 같다.
검색 순위에 오를 만큼 식당의 음식 맛은 괜찮았다. 거하게 점심을 먹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가다 보니 핑크 성당이 나온다. 명성답게 성당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제대로 들어가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정문 안쪽에서 잠깐 서성이다가 이내 돌아 나왔다.
아랫길로 내려와서 장난감 모형 같은 샛노란 용다리도 보았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헛헛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 다낭은 그저 대한민국 다낭시였다. 반나절을 돌아보고 나니 다낭에서 보낼 3일이 걱정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오지 않았을 다낭이다.
사람마다 여행의 이유가 다 다르겠지만 여행할 때마다 그 나라 특유의 전통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다낭은 늘 생활하는 도시와 다를 바 없는 그렇고 그런 곳이었다.
다낭 대신 후에를 갈 걸 하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 했다. 어쩔 수 없이 점심을 먹고 나서 호텔에서 수영으로 심통난 마음을 조금 달래고 이른 저녁에 링엄사로 갔다. 미케비치에서 바라보면 높다랗게 솟아오른 하얀 석상이 눈에 띈다. 뒤에서 보면 마리아상 같은데 앞에서 보면 후덕하고 예쁘면서도 잘 생긴 불상이다.
링엄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제법 있다. 다낭에서 딱히 갈 곳이 별로 없는 터라 시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여기가 아닌가 싶다. 심통난 마음으로 왔을 때는 모르겠더니 자꾸 볼 수록 불상에 마음이 간다. 실망한 다낭을 용서(?)하라고 한다.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않냐고......
반대편 도시로 해가 지고 있다. 겁 없는 원숭이 떼들이 일몰을 즐긴다. 여행객들에게 길들여 있는지 전혀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저도 같이 온 여행객쯤으로 아는 것 같다. 누구든 저 자리에 저러고 있으면 똑같이 보이지 않을까마는 일몰을 바라보는 원숭이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 있다. 녀석도 일몰의 정취를 알까? 해지는 다낭을 바라보며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린 원숭이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이리저리 가지를 흔들며 묘기를 부린다. 제 앞에 떼로 몰려 있는 여행객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당당하다.
링엄사에서 바라본 다낭의 일몰은 긴 해안선을 따라 늘씬하게 내리고 있다. 날씨가 흐려 더 이상의 멋진 일몰은 볼 수 없지만 툭 트인 바다를 보니 다낭에 서운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야시장을 가기 위해 절을 나섰다. 절 밑에는 요금을 절충하며 다가서는 차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그랩으로 굳이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랩 가격에 합의할 수 도 있고 더 싼 가격으로도 흥정이 가능하다.
손트라 야시장에 들러 대충 눈으로 휘 둘러보았다. 늘 보던 야시장이라 크게 특별할 것이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용다리를 걸어서 건너보기로 했다.
다낭 가서 제일 잘한 게 있다면 용다리를 걸어 본 것을 꼽겠다. 꼽을 게 없어서 일수도, 그동안 해본 일이 아니어서 일 수도 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해가 지면 밖을 잘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야경을 보며 걸을 일이 거의 없다. 30분가량 걸었을까?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걸어가기 적당하다. 멀리서 불빛이 화려하게 빛난다.
낮에는 맹숭맹숭하더니 밤의 불빛을 받아 다낭은 낮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조차 인공적이다. 문득 크로아티아 스플리트가 떠오른다. 밤바다에 드리운 불빛이 일렁일렁 스플리트의 야경을 생각나게 한다. 다낭에 와서 스플리트가 그리워진다. 도무지 다낭에 빠져지지 않는다. 이 상황이 참 어이없다.
다들 퇴근하는 시간인지 다리를 건너는 차들과 오토바이로 시내는 온통 정신이 없다. 신호등은 있으나마나 무시하고, 보행자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리에게 오히려 차 머리를 막무가내로 들이대며 왜 앞을 가로막냐는 식으로 자동차는 연신 빵빵거린다. 어이없는 교통질서다. 무질서와 질서의 의미가 통째로 뒤바뀐 동네다.
용다리를 건너와 맞은편에 있는 커피점에 들렀다. 꽤 넓은 카페이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나와 일층 야외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숨을 돌린다. 할 일 없는 내일에 반항하듯 늦은 커피를 때려 붓듯 들이킨다. 하루 종일 욕을 먹은 다낭의 밤은 억울한 티도 내지 않고 점점 더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