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이안에서 타박타박

호이안에 일렁이다

by 파란 해밀


2019.12.13. 호이안에 일렁이다.



며칠 남지 않은 연가를 모아 올해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일부러 작정한 것은 아닌데 올 들어 베트남을 세 번째 찾는다.


1주일 일정으로 다낭과 호이안을 다녀올 예정이다. 이번 여행은 생일 선물로 남편으로부터 다낭 여행을 허락(?) 받은 직장 후배와 함께 가게 되었다.


후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이 몇 번 다낭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이번 여행은 왠지 효도관광처럼 편하게 다녀올 것 같다.



이른 새벽에 다낭에 도착해서 곧바로 호이안 숙소로 갔다. 호이안에는 소리 없이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창 밖으로 보이는 동네는 오래 살던 동네처럼 편안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올드타운부터 찾았다.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곳이다. 일본과 교역을 했던 곳, 제사를 지내는 곳, 일본 다리, 카페, 옛날 집, 상점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금액은 우리 돈으로 몇 천 원 밖에 안 하는데 우습게도 어디로 들어가는지에 따라 표를 사야 하거나 아니면 그냥 들어갈 수도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매표소가 아닌 쪽으로 그냥 들어가고, 모르는 사람은 정직하게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들어가다가 입장료를 내야 한다. 어이없는 입장관리이다.



가다보면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에서 각기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가이드가 있어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 더 좋겠지만 건물 내에

영어로 간단한 설명이 되어 있어 어느 정도 유래를 알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한국 단체 관광객이나 외국인과 함께 온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도강(?)할 수 도 있다.


좁은 공간에 손바닥만 한 의자 몇 개가게가 될까 싶은 작은 카페들이 베트남에는 흔하게 있다. 궁둥이가 큰 사람은 앉기도 불편하겠지만 아기자기하고 정감이 간다. 저기에 앉으면 앞에 앉은 이가 누구든 내 속내를 다 털어낼 것 같다.



예비부부의 웨딩촬영도 전혀 번잡스럽지 않다. 예비 신랑의 자뻑(?)에 찬 포즈로 생긴 거리 때문에 신부가 조금 어색하고 외로워 보이는 건 단지 사진 찍는 순간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오전이라 그런지 호이안의 올드타운은 매우 한적하다. 밤의 화려한 무대를 위해 조용히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인지 관광지답지 않게 조용해서 산보하듯 둘러보기 좋다. 건물의 노란 페인트 색이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주변과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



여기저기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올드타운의 끝이 나온다.

"에게? 이게 다야?" 할 정도로 올드타운은 작다. 그래도 한 번 갔을 때 못 보았던 것이 두 번 갔을 때 보이기도 하고, 갈수록 작은 디테일이 느껴진다.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어 아래 윗길 아무데나 걸었다. 비슷한 듯, 다른 듯 타박타박 걷다 보면 "어? 아까 왔던 곳이네?" 하기도 한다.



다음 날 새벽시장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중앙라인에서 한 블록을 내려오면 새벽시장이 있다. 갖은 야채와 과일, 수산물들이 풍성하다. 어딜 가나 시장은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싱싱한 망고 한 팩이 천 원이다. 두 팩을 샀다. 달고 맛있고 거기다 양도 많아서 다 먹을 때까지 감탄에 감탄을 하며 먹었다. 야시장에서도 과일을 팔지만 그곳보다 신선도나 가격 면에서 훨씬 좋다.



북적거리는 새벽시장을 빠져나오면 호이안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투본강이 나온다. 아직은 본 무대가 펼쳐지는 저녁이 아니어서 텅 빈 것 같지만 한가로우면 한가로운 그 자체로도 좋다.



밤과 달리 조용해서 정취에 취해 걷기 좋다. 다낭에서 당일치기로 오면 놓치기 쉬운 호젓한 여유로움이 강을 따라 흐른다.


나보다 앞서 걷는 하얀 강아지가 눈에 띈다. 베트남 어딜 가나 수더분한 누런 똥강아지만 보다보니 생기발랄한 스피츠가 오히려 어색하다.


옆을 지날 때마다 간간히 배를 타라는 호객행위가 있긴 하지만 밤처럼 집요하지는 않다. 호이안은 두 얼굴을 가진 여인 같다. 낮의 정숙함과 밤의 요염함을 갖춘 매력 있는 곳이다.



우기임에도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좋아서 편하게 돌아다니기 딱 좋다. 여행의 반은 날씨라는 말이 틀림없는 12월의 호이안은 말 그대로 하늘이 도와준 땡잡은 날씨다.



발 가는 대로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스카프와 카펫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인도에서 왔다는 남자 판매직원은 오랫동안 영업을 했는지 손님을 다루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손님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채근하지 않으면서도 고객을 공략(?)할 절대 타이밍을 알고 부드러운 어조로 치고 들어온다.


푸른 스카프 하나 사만 오천 원을 주고 샀다. 여행 중에 시원하게 잘 쓰고 다녔다. 색상이나 소재도 다양하고 퀄리티도 좋아 한 번쯤 들러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올드타운을 둘러보고 안방 비치로 갔다. 이름 그대로 안방(?)처럼 아늑한 해변이다.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금방 마음이 가는 그런 곳이다.


안방 비치에 왔다는 인증샷을 한 번 남겨보려고 했지만 명품샷을 원하는 여행객들에 밀려 다른 사람 뒷모습만 잔뜩 찍다가 결국 포기했다.



파도는 바닷물을 찍어 백사장을 화선지 삼아 자분자분 붓질을 한다. 마음에 안드는지 연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수영복을 안 가져온 것을 후회하며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함성을 등에 업고 내 것인 양 같이 즐겨본다.



파도는 쏜살같이 달려와 백사장을 걷는 건장한 남자들의 발바닥에 간지러움을 태우고 도망간다. 성수기에 왔더라면 빈 선베드가 있을까 싶다. 12월의 안방 비치는 덥지도 춥지도 않으면서 해변을 즐기기에 딱 좋은 때인 것 같다.



등이 벌게지도록 무얼 저리도 열심히 만드는지 소년은 제 등 타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모래놀이에 열중이다. 서양 아이들도 두꺼비집을 만들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나도 헌 집 주고 새 집 하나 받고 싶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느긋한 점심을 먹고도 한참을 더 있다가 자리를 떴다.



올드타운으로 다시 돌아와서 사진 전시점을 찾아갔다. 호이안에 살고 있는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가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주로 동남아와 쿠바 사진들이다.


노란 벽을 지나는 이 사진은 마그넷에 자주 본 장면이다. 그 마그넷을 볼 때마다 눈이 많이 갔었는데 이게 바로 그의 작품인 줄은 이 곳에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사진 중에 한국 할머니 사진도 있다며 직원이 보여주었는데 세월의 주름 앞에서는 베트남 할머니를 당할 재간이 없다. 한국 할머니의 완패다. 얼굴의 진한 주름도 세월에 묵히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순수한 미소가 사진을 뚫고 전해지는 것 같다. 몇 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지만 언제나 이동이 문제다. 가격대는 제법 있다. 작은 소품은 4만 원대에서 시작해서 몇 10만 원대까지 사이즈도 다양하다.



사파에서 즐겨 보았던 고산족 할머니 사진이다. 손에 베인 천연염색 물감이 다시 만난 지인처럼 반갑다. 할머니 손에 묻은 염색물처럼 문득 사파가 새파랗고 선명하게 그리워진다.



서서히 등을 밝히는 호이안은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거리는 낮보다 더 활기차 보인다.



낮동안 조용했던 투본강에 소원 배들이 반딧불이처럼 떠다닌다. 투본강은 다 들어줄 듯 모두의 소원을 싣고 소리 없이 흘러간다.


나이가 드니 딱히 빌 소원도 없다. 배 대신 강가에 앉아 강에 뿌려진 불빛을 바라보았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매력 있는 곳이다. 낮에는 맑은 민낯 그대로였다면 밤에는 진한 색조화장을 하고 한껏 끼를 부리는 무희처럼 화려하다.



아무것을 하지 않고 한동안 바라 보고만 있어도 좋다. 물 위에 비치는 색색의 등불에 취해 나도 등불인 양 호이안 투본강에 소리없이 일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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