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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페낭 일기 05화

(말레이시아) ​나비한테 물어봤나?

by 파란 해밀


2019. 03. 04. 페낭 나비농장 엔토피아



바투페링기에서 3일을 머물면서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나비농장을 찾았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곳이라서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는데, 마침 바틱 제품을 구경할 수 있는 곳과 멀지 않아 근처에 가는 김에 들러보기로 했다.



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단위로 찾은 사람들이 많다. 들어서면 제법 비싼 입장료가 미안하지 않도록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처음 보는 다양한 나비들이 지천이다. 난간 위에도, 풀 잎사귀에도, 꽃잎을 받침대 삼아 갖가지 나비들이 앉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날아갈 생각을 않는다. 일부러 손짓으로 바람을 일으켜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관심이 없는 건지, 내가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아는지, 날아갈 필요가 없다는 건지 속을 알 수가 없다. 그 모습이 마냥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처음 보는 나비들이 수두룩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노랑나비나 호랑나비 두세 가지 외에는 특별히 본 적이 없으니 나비농장에 있는 나비들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들이다.



나비농장은 어떻게 보면 커다란 비닐하우스다. 꽃과 나무, 나비가 어우러져 있는 시설 좋은 비닐하우스이다. 나비가 날아봐야 얼마 못가 천장에 닿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날아 가지 못한다는 것을 나비도 알 것이다.



단지 내 생각 탓일까? 어렸을 적, 아지랑이 가물거리던 봄이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며 넘나들던 노란 나비에게서 느꼈던 그 기분 좋은 나폴거림은 없어 보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남편은 1년 선행학습을 시켰다. 주말마다 타이트하게 짜 놓은 계획대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두 아들의 영어와 수학을 남편이 직접 도맡아 가르쳤다.


간혹 남편에게 아이들 상황에 맞게 적당히 강도를 조정할 것을 에둘러 얘기했지만, 그는 아이들이 잘 따라오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만 했다.



빡빡한 일정에 잡혀 남편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는 녀석들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공부량이 많으니까 조금 조정해 달라고 아빠한테 말씀을 드려. 얘기하면 들어주실 거야"
"아버지는 어차피 아버지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시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얘기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요?"



엔토피아의 나비를 보며 문득 두 아들의 빠른 체념이 오버랩된다. 이곳 엔토피아가 나비에게도 유토피아로 여겨질까?



대충 눈으로 훑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잡으려고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올라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잘 잡히지 않아서 그냥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널찍하게 뻗은 도로에 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 여유롭게 걷기 좋다.



흙길을 걸었다가, 포장도로를 걸었다가, 지나는 길에 궁금한 게 있으면 멈추어 구경도 했다가, 예쁜 가게가 있으면 들러보기도 한다. 엔토피아 밖은 안보다 햇빛이 더 강하게 내리쬔다. 그 빛이 오늘은 전혀 밉지 않다. 바람이 불고 햇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에서 걷을 수 있어 행복하다. 내가 있는 이곳이 유토피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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