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래서 생그래 3

민정이가 자란다. 생그래가 자란다

by 예농

마음의 집에는 문이 있어

마음의 집에는 문이 있어.
어떤 사람은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어떤 사람은 활짝 열어두지.
문을 아예 닫고 사는 사람도 있단다.

마음의 집에는 방도 있어.
어떤 방은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어떤 방은 좁아서 겨우 자기만 들어갈 수 있지.......

<마음의 집, 김희경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창비>


1학년 꿀렁이들도 그랬다.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일 년 내내 활짝 열어둔 아이가 있다. 상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좀처럼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문을 활짝 열기도 한다.

어떤 방은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민정이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어, 넓은 방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친구들도, 교사인 나 역시도 그곳을 왔다갔다 했다.


작년 10월 어느 날

수호야, 이리 와 봐.
네 친구 정민이가 지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애.
너가 좀 와줘야겠어.


민정이가 교실 끝에서 놀고 있는 수호를 큰 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달려온 수호에게 민정이가 뭔가를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아이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민이. 자세히 보니, 정민이 표정이 심각하다. 눈물도 그렁그렁.

'뭔 일이 곧 일어날 것 같은데...'

그때 쿨메신저 하나가 날아왔다. 잠깐 일을 처리하고 아이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싸우거나 우는 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아니었다. 긴장감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민정이, 정민이, 수호가 나란히 앉아 디폼 블럭 팽이를 만들며 놀고 있었다. 가운데 앉은 정민이의 웃음소리가 교실 앞에 있는 나에게도 또렷이 들려왔다.


"민정아, 아까 정민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

민정이를 불러 정민이가 왜 심각했는지, 어떻게 그 마음을 풀어줬는지 물어보았다.

"어... 아까 정민이가 준이하고 싸웠는데, 준이가 심한 말을 했대요. 어... 어... 정민이가 속상한 것 같아서... 수호한테 오라고 했어요. 정민이가 수호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민정이가 정민이를 위로해주었던 거다. 속상해하는 친구를 보고 자기도 마음이 속상했던 민정이. 나도 마음의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다. 민정이는 모를 테지만.


다음은 작년 3월에 썼던 글의 일부인데 여기에 다시 싣는다.

모래알처럼 한 줌 한 줌 빠져나갔다. 나의 3월이.


1학년 부장과 안전교육부장인 내게 3월은 고역이었다. 아이들과의 설레는 첫 만남, 1년 학급살이를 튼튼하게 짜기 위한 아이들과의 팽팽한 밀당, 학급 세우기의 보람으로 가득 차야 했을 3월 한 달. 그 한 달 동안 나는 학교 업무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 이런 업무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학교 전체에 배치된 소화기 개수를 조사해 기록해야 할 때는 내가 왜 이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이 작업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일 우리 반 아이들과의 수업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3월을 지나며, 교사로서 내 영혼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3월 끝무렵 어느 날, 아이들은 집에 가고 비뚤어진 아이들 책상 줄을 고르게 맞추고 아이들이 책상에 놓고 간 것들을 서랍 속에 넣으며 교실 정리를 하고 있을 때, 발견한 민정이 책상 위의 보물들. 3월 첫 주 함께 만든 삼각 이름표, 그 안에 민정이는 갖가지 것들을 숨겨놓고 있었다. 그동안 칭찬 보상으로 받은 하리보, 담라 젤리, 츄파춥스 사탕, 점심시간 운동장 놀이 시간에 주운 듯한 작은 빨간 열매들. 그리고 작은 돌멩이들까지.

'다른 아이들이 가져가면 어쩌려고.'

'이런 과자류를 안 좋아하나?'

생각했다가 3월 한 달 동안 내가 보아왔던 민정이를 떠올려보니 생각이 정리되었다.

'먹고 싶은데도 집에 가져가지 않고 꾹꾹 참고 모아두었구나.'

그동안 내가 보아온 민정이는 그랬을 것 같았다.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사이, 그동안 빠져나갔던 내 영혼이 조금 채워짐을 느꼈다...


어떤 방은 좁아서 겨우 자기만 들어갈 수 있지

집주인 민정이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방. 나는 민정이의 생그래를 보며 들여다보았다. 민정이가 시를 이해하고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 생그래 몇 편을 싣는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몇 년 전 6학년 담임 시절 우리 반 한 아이로 인해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마음이 심란해 출근도 하기 싫었던 그때, 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마다 떠올렸던 시, '새로운 길'. 1학년인 민정이에게 '새로운 길'은 바뀐 방과후수업에 빨리 가는 '새로운 길'이었다.

나는 아유에게 방과후 빨리 가는 법을 가리켜줬다. 그 길은 서유도 안다. 나는 그래서 목요일날 방과후를 서유랑 같이 간다.





눈 감고 간다
윤동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을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 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작 떠라.

1941.5

이 시는 태양, 별, 밤, 씨앗, 발 뿌리, 돌... 은유로 가득 찼다. 윤동주 시인이 말하고자 한 바를 1학년 아이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무엔'이 부른 시 노래 '눈 감고 간다'를 유튜브에서 찾아 아이들에게 열심히 들려주었다.) 시인 윤동주에게 '두려움에 맞서는 와작 뜬 눈'은 민정이에게는 '지나가는 생쥐를 보고 와작 뜬 길고양이의 눈'이었다.

길고양이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왜냐면 어둑어둑한 밤에 길고양이가 자고 있을 때 생쥐가 지나가서
그 길고양이가 눈뜬 거예요.

이렇게 유쾌함을 주는 민정이는 밝은 시를 만났을 때, 오히려 마음이 묵직해졌다.


참새
윤동주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루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 자 한 자 밖에는 더 못쓰는 걸.

참새들은 힘들겠다.
너무 너무 힘들겠다.
우리도 힘들지만 참새들도 힘들겠다.


시 속 참새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마음을 담았다. 이번에는 김금래 시.


난 빛덩어리
김금래

달님이
호수 눈동자가 된 날

하늘에 떠 있는
자기 모습을 처음 보았어

달님은 울먹였어

이게 꿈은 아니지?
저게 나란 말이지?

돌덩어린 줄 알았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빛덩어리란 말이지?

나도 빛덩어리가 되고 싶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금요일.
영어학원을 안 가면 될까?

민정이 생그래를 읽고, 이번에는 내 마음이 돌덩이가 되었다.



작년 12월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과 바깥놀이를 하러 나갔다. 신나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민정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작은 빨간 열매들. 학기초 3월에 만든 삼각 이름표를 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면, 민정이는 그 안에 또 이 열매들을 넣어두었을 테지.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모든 순간이 모여 민정이를 자라게 한다.
운동장에 떨어진 작은 열매를 줍는 순간.
정민이와 디폼 블록 팽이 놀이를 하는 순간.

그리고...

민정이가 시를 읽고 생.그.래를 하는 순간에도.


. 생태 동시를 외워요

. 그림을 그려요

. 내 느낌과 생각을 말해요.

민정이 생그래


*아이들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