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11

호텔을 빠져나와 공장으로 가는 택시 안.   

   

개인적으로는 평범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일이 일어났지만      

남국의 아침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특유의 나른함을 보이고 있었다.     

무리한 얘기나 해서는 안 될 비밀을 발설한 것을 바로 알아채고는 황급히 화제를 바꾸는 것처럼 묘하게 작위적인 풍경이었다.                 

차창밖 이국의 사람들은 그저 영혼 없이 들판을 가르는 한 무리의 *레밍 ( 나그네쥐 ) 때 같이 느껴졌다. 

무의미함이 거리에 가득했다.  간 밤에 세상을 내가 구해버려 다시 전과 같은 무의미한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에 실망한 것 같은 나른한 풍경.      

*  레밍 ( 나그네쥐 ) : 자살을 한다고 흔히 알려진 쥐과의 동물. 진실은 그저 앞으로만 몰려가는 습성으로 인해 절벽에서도 뒤로 가지 못하고 떠밀려 떨어진다.   



   

생이 무의미하다는 실존적 자각이 있는 걸로 보아 나는 다시 이전의 정상적인

세계로 진입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더 무의미한 세계로 떨어졌던지.      

의식이 좀 더 또렷해지기를 기다렸다.     

정리할 생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그게 어디 정리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법정에 서서 간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음에 일말의 거짓이 없다고 선서할 수 있을까? 가정이긴 하나,  일이 그렇게 까지 치닫는다면 무엇을 위해 선서하게 되는 것일까. 사회의 정의? 내 감각의 올바름? 이제 이걸로 귀신의 존재는 명확하니 나를 따르라?  생각을 집어치웠다.  더 이상 뭘 생각해 봐도 의미 있는 정리가 불가능했다.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제 일을 겪는 것을 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겪었고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세계의 전부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외한다면.  

타임머신은 조금 더 유용한 것에 쓸 것이다. 내게 그런 재량권이 주어진다면 말이지만.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게 도대체 뭐였을까라고  한참을 생각하던 중,  옆을 스치는 고속버스 문짝에 그려진 광고 속에 등장하는 아기 귀신을 보며 마침내 그 존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강시였구나 ]                    

1980년대 홍콩영화의 메인 테마.     

그 한동안의 시절이 지나, 스크린에서도 비디오방에서도 내 의식에서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깡그리 사라졌었던 강시.  중국의 좀비.

일반적으로 귀신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사라지면 실체도 사라지는 법이다. 

중국이라고 중국 토착 귀신인 강시가 나타나다니. 

소복이 우리의 수의인 것처럼, 관복이 청나라의 수의라서 중국 귀신은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얘들은  왜 뛸까.     

항간에는 전쟁에서 죽은 시체들을 한꺼번에 최대한 많이 옮기기 위해  대나무를 써서 시체들의 소매 부분을 일렬로 연결했고, 이동할 때  대나무의 탄성 때문에  아래위로 뛰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것이 강시 전설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시체를 옮겨보지 않은 자들의 상상일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무게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 뭐가 어찌 되었건,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예전의 

스탠스를 취할 수 없게 되었으니, 죄짓지 않고 살아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그는 그다음 날 호텔을 옮겼고 나는 원래의 호텔로 돌아가 하룻밤을 더 묵고  사비로 요금을 치르고 귀국했다.

이전 10화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10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