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12

나는 이 경험을 국문 영문으로 적어 사보에 올렸고 전 그룹사 직원들의 관심과 메일을 받았다. 


육 개월 후. 싱가포르 아시아 본사 사보팀 여기자가 인터뷰 차 직접 한국으로 왔다.

     

“그러니까 당신은 중국에 아니 이 세계에 그러니까 요즘 세상에 실제로 강시와 같은 악령이 있다고 100% 생각하시는군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100%까지 들먹이겠어요. 하지만 그 정도의 사실감 있는 묘사는, 직접 눈으로 본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는 힘들다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물론 근거나 증거는 없습니다.”

나와 같은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너는 이성적인 편이 아니다는 완곡한 표현을 했다.     


그 가자는 내 얼굴을 맹렬하게 응시하다가 틈을 두고 질문을 이었다.     

“X-File의 멀더처럼 I want to believe 신드롬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은요? “

“UFO나 외계인은 개인적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기자님은 정체 모를 것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다 그쪽 믿음으로 갖다 부치는 경향이 제게 있지 않나라는 것을 묻고 싶으신 거잖아요.  하지만 이건 좀 다른 차원이라 생각합니다. 평소에 생각하던 믿음의 경향과는 다른 부류의 존재가 나타난 것이니까요.”  


무언가 난해한 초현실주의 그림을 대하듯 나를 바라보던 그 기자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다는 말투였다.

     

“믿느냐 마느냐 선택의 양 극단에 서기를 강요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한 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바로 밀려왔다. 너무 가식적인 멘트였다.     


“가운데 회색지대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지독한 훈계가 바로 날아왔다.

   

“너무나 많은 말을 해오면서 말속에서 진화된 것이, 실제 있었던 일과 기억 속에서 치환되었을 가능성은요? 이른바 리플리증후군 같은. 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인간의 기억에는 작은 왜곡들이 즐비합니다. 커다란 왜곡도 몇 개는 있기 마련이고”      

사악한 질문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사이에는 서로가 생각하는 것 따위는 훤히 꿰뚫고 있다는 오만함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도 못된 질문이었다.

     

”개별적 인간의 기억은 그렇다 치고, 이야기 속에 같은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 등장합니다. 그를 인터뷰하셔도 됩니다. 지금 마침 3층에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개별적 인간의 기억 왜곡인지 의도적 날조인지 아니면 총체적 이야기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를 인터뷰해 보세요”        

숙련된 기자의 냉소적이고 뾰족한 질문에 나는 손목을 걷어 시계를 보았다.

비호감 질문을 계속할 거라면 이제 그만하자는 조그만 항의로.    


 


 

그 이야기 속 직원의 면전에 내게 했던 것보다는 형이하학적 마이크가 들이밀어졌다. 

    

“한국 사보에 실린 글이 사실인가요?”     


“저는 잠이 들면 좀처럼 중간에 깨지 않는 편이라 확실치는 않은데,      

 다음 날 만난 호텔직원이 아래층 호실에서 민원이 들어왔으니 저보고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하더군요. 

조깅은 밖에서 하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짐을 싸서 바로 호텔을 옮겼었어요. 꺼림칙하잖아요”     


“그럼 혹시 옆에 계신 글쓴이가 방에서 뛰었을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하.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추론입니다만. 한 시간여를 쉬지 않고 뛰는 것이 보통사람으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고... 제정신이 고서야 어디...  막 도착한 호텔방에서... 참! 기자님. 싱가포르에서 오셨잖아요.  도착한 첫날밤 어떠셨어요?” 


“샤워하고 맥주 한잔 마시다 기진맥진 곯아떨어졌죠.”     


“조깅기구 없는 방에서 한 시간을 뛸 생각 같은 건요?”     


사보 기자는 여기서 잠시 틈을 두었다.  외모만큼 아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본인이 그 괴기한 이야기 속에 등장한 것을 기뻐하고 있나요 아니면 적잖이 불쾌했나요?”    

 

“즐거웠습니다. 일단 내가 나왔으니까요”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대답을 들은 양     

“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빨리 마무리 지었다.     

  

“그 글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었고. 감사는 저기 글 쓴 분에게...” 

 남자 직원이 썰렁한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어쨌거나”라고 기자가 잘라 말했다.  많은 인터뷰를 진행해 오면서 남의 말을 막아설 때 하는 말 습관인 듯 높낮이 없는 억양이었다. 

그저 어딘가 좀 허언증에 걸린 모자란 사람인지, 아니면 예사롭지 않은 일을 실제로 겪은 것을 말하고 있는 정상적 사람인지 사보팀 기자는 시종일관 그의 얼굴과 말하는 본새를 관찰하고 있었다.  

             

얘기가 끝나자 사보팀 기자가 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 사람도 저렇게 말하는데야 어쩔 수 있나. 뭔가 있긴 있었나 보지라는 제스처였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제스처는 아니었다.        

이전 11화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1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