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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10

그 존재는 다시 한번 이륙을 준비했다. 

이 번 착지의 끝에는 반드시 내 주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성난 짐승처럼, 늘어진 혀를 삼키고 두 발의 비명을 질렀다.

비명으로 내 지른 것은 내 이름이었다. 

“나는 OOO이다! 나는 OOO 이다!”    

   

‘파르르르륵’ 

         

나타날 때 보다 살짝 힘 빠진 소리였다. 

한창 조업 중인 생산기계가 갑자기 두꺼비집이 내려갔을 때 나는 소리.     

그 존재는 다시 한번 그런 기이한 소리를 내고 사라졌다.   

            


 

팔다리에 걸린 결박이 풀리자마자, 퍼뜩 정신을 차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불을 켜고 냉장고의 생수를 들이켰다. 그리고 오래도록 폐에 고여 있던 그 존재의 곰팡이가 뭍은 숨을 샅샅이 찾아 밖으로 다 토해냈다.

얼마나 절실히 원했던 빛과 물과 공기였던가, 예전엔 미처 몰랐던 감사함.


이 감사함이 또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지 않기를. 이런 것을 두고 또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를.      

 

침대 중간의  시트가 엉망으로 일그러진 채  중간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풍랑을 맞은 작은 배가 포구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실제로 거센 폭우와 파도가 미쳐 날뛰던 밤이었다.

이렇게 세계는 다시 간단히 대홍수 이전의 고요로 돌아가 있었다.



          

아침.     

침대를 함께 쓴 그에게 간밤의 얘기를 해 줬고, 나는 짐을 챙겨 호텔을 떠날 채비를 했다. 

그는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고서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내 입을 떠나 그의 고막에 도착한 소리가 좀처럼 뜻을 가진 언어로 변환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단지 실제로 목격하고 당한 것을 내가 가장 익숙한 모국어를 빌어 소리로 전달했을 뿐.

         

말을 전하고 침대에서 내려서려 하자 침대의 어느 부분에서 삐그덕 하고 소리가 났다. 이번엔 언어로 된 뜻을 가진 소리도 아니고 사람이 흉내 낸 의성어 의태어도 아닌 진짜 사물이 내는 소리니까 뭔가 짚이는 데가 있기를.  어제저녁까지는 견고한 침대였었어.


그는 삐그덕 소리가 났던 침대의 부분을 잠시 더듬다가  더듬고 있는 자기의 손이 어떤 피해를 당하지 않았나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 손이 아주 중요하다는 듯 반대편 손으로 감싸며 자신만 들을 수 있게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갈 곳 잃은 그의 시선을 보았다. 무슨 말을 생각해 내다가 실패했는지 나를 보았다.   

  

‘그게 다 무슨 말이죠?’  

‘난 그 정도의 스펙터클을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 지어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말을 좀처럼 해석하지 못하는 것 같아 눈으로 나눈 대화였다. 대화가 성립했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 수 일 수 있지만.


내가 호텔방을 나갈 때 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고 있었다.

자신은 보고 들은 것을 쉽사리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전형적인 포즈였다.

귀에 들렸던 우려스러운 이야기를 팔짱으로 일단 잘 막아 놓고  가슴속으로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하는 포즈. 그게 고민에 빠진 현대인처럼은 보이지 않고 혼란에 빠진 곰 한 마리로만 보였다.     

               

체크아웃은 내 몫이 아니어서 로비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데스크에 피차오를 입은 호텔직원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간밤의 존재도 청나라 복식을 입었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른다. 여기가 중국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우연의 일치는 썩 달갑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닌 짙은 복선이었다면 실제로 나는 죽음의 문턱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다녀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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