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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3

루마니아 혹은 불가리아의 어느 해묵은 숲에 있는 오래된 성인 듯 호텔은 급한 비탈길을 다 올라선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낭떠러지 말고는 있을 것이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이쪽으로는 여기가 세상의 끝입니다라는 이정표 역할을 기꺼이 맡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첫 번째 역할은 숙박업이겠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이승의 끝에 지어진 망자들의 영혼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현생에서 덕을 많이 쌓은 망자들이 몇 없는지 불 켜진 객실의 수는 얼핏 서너 개.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도 주변에 이렇다 할 이웃될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조망권을 누리기 위해 이런 곳에 호텔을 건축했다면 확실하게 판단미스다.



 

밤공기는 폐가 시릴 만큼 깨끗했고 누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소음은 내 행동에 주의를 요하고 있었다.     

이미 주차장을 차지하고 있는 몇몇 차량들이 다소 안심을 주었지만 사람들의 출입은 없었다. 

뭐 이러다가도 아침이면 사정이 크게 달라져 많은 사람들이 로비를 채우고 있겠지.      

로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 현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혹 망령들이 그 안쪽을 거닐고 있으면 그 길로 냅다 튀기 위해.

 

여자 직원 한 명이 중국전통 의상인 파란색 치파오를 입고 손님을 기다리며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중국여자들은 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선이 어딘지 모르게 한국여자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한번 더 했다. 

내 가설이 맞다면 (이 얼마나 기만적인 문구인가) 깍두기 도라지 고사리 진미채무침 같은 질긴 것들을 즐겨 먹는 우리와는 달리 연한 고기만을 많이 먹어 하관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다.     

치파오. 청나라 만주족의 복식이다. 당 송 명대의 어느 복식도 저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원래는 저렇게 몸의 굴곡을 심하게 드러내지는 않았겠지만.       

그 한 명의 여자가 분명 사람인지 시간을 두고 꼼꼼히 관찰한 후 합격점을 주었다. 딱히 결점은 없었다. 외모가 너무 보기에 좋다는 것만 빼면.



      

남국의 바람이 한차례 급한 비탈길을 타고 올라와 호텔 외벽에 드리운 야자수 그림자를 현란하게 움직였다. 야자수 이파리들이 고대 흉수의 송곳니처럼 내 목덜미를 몇 번이고 노렸다가 물러갔다 하는 것을 피해 얼른 로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로비의 회전 유리문이 돌자 바깥에 머물던 어둠이 함께 달려 들어왔다.

별빛 몇 개는 회전하는 유리문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장식을 철저히 배제하기로 뚝심 있게 결정한 로비였다. 벽에는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았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보기보다 쉽지 않다.  

주요 도시들의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한 몇 개의 벽시계들이 전부. 뉴욕, 파리, 도쿄. 서울은 없다. 한성이 있다. 한성? 이런이런 이건 좀...     

장식이 있다면 여느 호텔과는 성분이 좀 묘하게 다른 공기와 기압이라고 할까. 

그런 거 어디서 파는 것일까?   

 

“좋은 저녁입니다. 근사한 호텔이네요.”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너무 외딴곳에 위치해 있죠. 죄송합니다.”     

내 상투적인 인사를 받은 호텔의 여자직원은 하자 없이 인사를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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