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깃에서부터 가슴까지 걸쳐 있는 용문양이 그녀의 발성에 맞춰 꿈틀댔다.
불과 두어 시간 전 택시에 오르기 전까지 세계는 내게 앞뒤가 들어맞는 익숙한 곳이었다.
비록 그곳이 중국의 어느 공항이었대도 여전히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택시를 탄 이후부터 조금씩 낯설어지고 있다. 꿈틀대는 용문양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호텔직원의 보랏빛이 도는 립스틱과 표정이 결여된 목소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백만 번 정도를 해서 감정이 아래위로 다 깎여 나간 억양.
이 이상의 친밀한 대화는 거부한다는 듯 높낮이 없이 한 음으로만 구성된 영어 억양.
두 음이었나?
저 말을 돌려줄 때는 분명 웃는 얼굴이었는데, 자기가 가진 수분의 삼분의 이를 그 말에 실어 보냈는지 이내 건조한 표정으로 돌아간 것을 목격했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의 루비는 이제 막 누군가를 할퀴고 튄 한 방울의 피 같았다.
“죄송하긴요. 그쪽 잘못이 아닙니다. 여기에 호텔을 지은 데는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겠죠.”
“어쨌거나요.”
너무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하려 하는 내 입술을 사력을 다해 저지했다.
‘At any rate’ 한국말로 하면 ‘어쨌거나’라는 무례한 말이다.
저런 무례에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하나.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두 번 젓고 돌아 서서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여기에 머물고 있을 그 한국 직원을 빨리 만나 한국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의 카메라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내가 여기 왔다 간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무릇 세상엔 별의 별일이 다 있으니까 혹시 발생할지 모를 파탄을 대비한 기록의 차원에서.
그 직원은 잠들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덥석 안고 싶은 것을 간신히 자제하고 짧지만 힘 있는 악수로 대신했다.
“며칠이나 됐어요? 여기 묵기 시작한 거.”
“저도 어제 왔어요. 아니 오늘 새벽이라고 해야 하나. 오랜만에 왔다고 여기 공장 직원들과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는 바람에 날이 다 밝은 후에...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에이 아시잖아요.”
알긴 뭘 알아. 난 당신이 밖에서 보낸 밤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어.
조금 전의 반가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한심해 보임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그 직원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아 숙소를 공유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자기가 코를 심하고 골고 몸부림도 많이 치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나중에 합류해 방을 얻어 쓰는 내 입장을 고려해 보면 양해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은 없었을 뿐 더러 나 역시 잘 때 끙끙 앓는 버릇이 있어 퉁 칠 수 있으니 그의 잠버릇이 오히려 반갑게 들렸다.
그가 냉장고에서 꺼내 온 캔 맥주를 하나씩 나눠 마시며 회사를 걱정하는 대화를 짧게 나누고 잠에 들었다.
호텔방과 침대는 나쁘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침대가 격하게 요동치는 느낌이 있어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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