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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7

내가 깨어났음을 침대 중간에서 뛰고 있는 그 존재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살며시 실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침대의 요동에 맞춰, 그 직원의 몸이 들썩이는 것이 실눈을 뜬 내 눈의 모서리에 들어왔다. 

그가 먼저 깨어 나를 봤다면, 내 몸도 분명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미련 곰탱이 같은 인간. 이 와중에 어찌 코를 정숙하게 골 수 있단 말인가.

    

요동이 갑작스레 멈췄다.     

이 사람도 혹시 깨어났지만 깨어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해오던 코골이 계속하는 것이 아닐까 살펴보려 몸을 반쯤 튼 채로 눈을 꽤 크게 뜨고 있는 나를 자각하는 찰나였다.   

   

잠시 동안의 정적. 

만약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라면 널찍한 킹사이즈 침대의 저 쪽 끝에 누워 있는 그 직원의 잠든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침대의 중간으로 돌아올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파르르르륵’

          

뭔가가 급히 움직이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내 배 위로 그것이 올라왔다. 

상당한 무게였다. 복근에 힘을 주지 않으면 내장이 터질 듯한 70kg 정도.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어둠 속에 좀 더 검은 실루엣이 형태를 서서히 갖추어 가는 것을.

실루엣은 끝내 사람의 모양이 되었고  푸른빛의 핀조명이 그것을 비췄다.  

무엇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지 알고 죽으라는 듯이.


검은 팔각모에 청색 관복. 

그 안감은 붉은색. 

가슴 언저리에 수 놓인 용 문양. 

생명의 징후가 없는 창백한 얼굴.  

생명은 없어 보이나 굳은 각오는 있어 보이는 얼굴. 무언가를 꼭 벌하겠다는.  

시선은 내 쪽이 아닌 정면의 어느 공간. 그 공간에는 물론 아무것도 없다. 

유독 이상한 건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는 두 팔.  

   

그 관복 아랫단을 타고, 차갑고도 어두운 기운이 내 볼 쪽으로 흘러내림을 느낄 수 있었다. 

체온을 앗아가는 냉기에 몸서리가 쳐졌다. 차갑고 어둡고 고독한 땅 속 구멍 깊은 곳에서 가져온 냉기였다. 

수백 년 묵은 곰팡이 냄새도 났다.    



 

완성도와 진실성이 떨어지는 무수한 귀신이야기를 접해 오면서, 어떤 부분이 착각이고 어떤 부분이 환각이며 어떤 부분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가려낼 수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그런 쪽의 상황이 아니다. 

이것은 착각도 환각도 지어낸 이야기도 아닌 객관적인 내 상황 그대로다.  

      

머릿속에 있는 갖가지 종류의 악한 존재들과 매칭을 시켜보았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히 이모저모 뜯어봐도 모를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온 것의 원류나 변종 비슷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인 것이다.   

무엇이건 이 호텔의 터나 건물과 사연이 얽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붙들려 있는 저주받은 존재일 테다.               

그리고 알고 있는 또 한 가지. 

무수한 귀신 얘기들이 얼마만큼의 진실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얘기 속 공통된 한 가지 상황은 누군가는 사달이 난다는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눈을 떠 보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기를 기대하며.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일반적으로 컴퓨터를 한 번 껐다 켜면 어지간한 먹통은 싹 해결되니까.     

힘겹게 찾아 띄워 놓은 인터넷 사이트 주소나  완성을 향해가는 원고를 포기할 때 보다 백만 배의 비장함으로 감은 눈이었다. 


이 한 번의 눈 감음으로 나는 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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