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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6

공포의 정도가 5초마다 제곱으로 커지고 있었다.  

    

제기랄. 사비를 주고서라도 원래 묵던 호텔에 갔어야 했어.     

패턴을 바꾸면서 나는 이상한 세계로 흘러 들어오고 만 거야.     

내가 이상해졌거나 아니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정신을 놓아 아주 미쳐버렸거나. 

그 둘 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반복된 타격으로 인해 급기야 침대 스프링이 피곤해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생각을 불허하겠다는 듯 무지막지한 타격과 진동이 계속 이어졌다.     

진동 한 번마다 영혼과 육신의 틈이 조금씩 벌어져 뒤틀리는 듯한 불길한 감각. 


내가 나의 영혼과 육신의 아귀를 딱 맞추고 살아가려 얼마나 고군분투했는데.

이방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오늘 밤 다 터져 죽을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 딱히 그렇지 않다.     

내가 나인 채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기나긴 비극에 비하면 이런 갑작스럽고 영문 모를 죽음은 기다려온 축복일지도. 죽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딱히 아쉬운 건 없다.  좀 더 재미있게 살지 못했다는 것 정도. 

     

가족들과 친구들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기를 우연히 그들과 같이 보냈다는 것뿐, 진정 보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행복해야 할 나 자신이었다.  설사 그게 가족과 친구를 모조리 갈아 치운 배경에 있는 나라도 상관없다.   

  

적지 않은 횟수의 낮과 밤에  고통 없는 죽음을 꿈꿨다.     

인간의 육체와 시간감각에 대해 말하자면, 아무리 극심한 고통이라도 1초를 견딜 수 없을까라고 생각해 왔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버리면 고통의 정도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가령 1초의 극심한 치통이 괴로울까 미사일을 맞아 폭발하는 차 안의 1초가 괴로울까라는 고민은 의미가 적다. 

다만 고통의 길이가 좀 된다면 살면서 맛보지 못한 고통이길 바랐다. 

알고 있는 것들이라면 진절머리 날 만큼 다 해봐서 시큰둥하다.

인간의 감각이란 상대적이어서 모르는 고통일 경우, 나정도로 다른 고통으로 단련된 사람이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염성도 없었고  증상도 없던  코로나를 내가 앓은 것처럼.


다시 1초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1초 만에 죽을 수 있다면, 해묵은 고통이건 최근에 파국을 향해 내달리던 고통이건 일시에 사라지고 곧장 평화가 깃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밤은 1초는 아니고 족히 한 시간은 넘을 것 같다는 생각의 바퀴가 다른 생각들을 전부 깔아뭉개고 돌진해 들어왔다.       


물론 그 보다 더 평화로운 방식으로 죽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죽어 있는 방식.

깨어났을 때 자신이 죽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감정일까.

아득한 허망함일까, 끝없는 실망일까, (말이 안 되지만) 죽을듯한 비탄일까, 기어이 해내고 말았다는 성취감일까, 분류가 불가능한 뒤섞인 감정일까.

그러나 그건 어차피 죽은 뒤의 일이다.           

오늘 죽어버리면 일생을 따라다니던 죽는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이게 도대체 뭐야. 뭐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살면서 들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물음표로 가득 채워진  구원 없는 영혼을 우주 끝까지 날려버리는 상황.  그 의문과 공포를 가지고 그대로 밤을 지새울 수는 없는 노릇. 


용기 내어 고개를 천천히 돌려 옆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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