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8

눈을 감고 얼마간의 시간 말미( 컴퓨터가 리부팅을 마치는 시간 정도)를 둔 다음 다시 눈을 떴으나 상황은 변한 것 없이 완전히 똑같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괜한 짓을 해서 더 급박한 상황에 몰려가고 있다는 사실.     

배 위로 올라온 그 존재로 인해 숨쉬기가 조금 더 힘들어졌다는 것.

  

이제 주위의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방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침대 중간에서 뛰기를 멈추고 내  배위로 올라와 정지하자 방안은 정적 속으로 떨어졌었다. 앞으로 뻗은 손으로 클라리넷 독주를 위해 오케스트라와 관중들의  모든 소리를 잠시 멈춘 지휘자의 지휘를 따르기라도 했는지.  

    

그 직원도 이제 코골이를 멈추고 축 늘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죽었나?

내가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내 영혼의 발은 버둥거리며 이불을 박차고 있었지만 횡경막이 눌려 산소가 차단된 육체의 생기는 분명 잦아들고 있었다. 

이대로 그리운 할머니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건가.

 

저건 창문의 문양이 빚어 놓은 빛의 굴절현상도 아니고 착시 같은 뭣도 아니야. 

제발 이쪽을 좀 봐줘. 공포스럽겠지만. 물병이나 베개나 내가 맞아도 되니 재떨이라도 좋으니 좀 이쪽으로 던져봐.  다 못하겠다면 코라도 다시 골아봐. 비겁하게 죽은 척하고 있지 말고. 너도 반드시 곧 들켜.



                         

오래전 군대에서 본부와 동떨어진 초소 경비를 섰을 때 앞동산에서 나는 기이한 소리가 있었다. 가보고 오라는 선임의 발길질을 당하며 동산을 오를 때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암구호!' 같은 경비병의 매뉴얼은 그때 내 의식에 없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귀신이건 시야에 들어온 대상을 향해 무조건반사처럼 외쳐야 하는 매뉴얼이었다.  하지만 그 기이한 소리는 내 언어를 공손하게 만들었었다. '누구십니까.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사람 말을 알아들을 귀신이라면 더더욱 공손해서 나쁠 건 없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결국 밝혀진 정체는 약간 이상하게 우는 고라니였었지만.

               

이번에도 존댓말로 자초지종을 묻고 싶었지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간절히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러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저는요 한국사람이거든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이 말이 먹히지 않으면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 둘 가치가 충분한 조건이나 이문이 남는 거래를 재빨리 찾아 말해야 했다.


그건 그렇고 평소에도 이런 태도로 삶을 대해야 되지 않나? 살아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태도.



 

내가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온 밤이 소요되는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 위에서 제자리 도움닫기를 준비하는지 무릎을 살짝 굽히고 뒤꿈치에 힘을 모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카덴자 부분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대로는 나는 내장이 다 터지거나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죽어 버릴 것이다.          

정신적인 충격과 물리적인 폭력을 동시에 주는 악령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동시 공격 앞에서  하루의 시간이 다 되어가는 하루살이처럼

내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이전 07화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