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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 Sep 03. 2022

23살의 내가 28살의 나에게

이 녀석 생각이 꽤나 깊었군

지난 7월, 중복(中伏)이었습니다. 

치킨집을 하시는 엄마를 돕기 위해 재택근무를 마치고 가게 일을 도왔습니다.

예상만큼 바쁘진 않았지만 잠시 주방을 거둔 후 배달을 도와드렸습니다.


저희 가게는 엄마가 2015년 사고를 당하신 이후 오토바이가 아닌 작은 경차(모닝)으로 배달을 하기에 모닝을 운전하며 동네 곳곳을 배달하였습니다. 


배달을 하다보면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 것 외엔 크게 없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제가 군대에 있었던 23살에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했던 독후감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책을 꾸준히 읽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꼭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작성하였는데 20살 즈음 책을 읽고 있던 제게 엄마가 다가와 "엄마도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기록을 안해서 대부분 내용을 잊어버렸으니 반드시 독후감을 쓰라"고 말씀하신 덕분에 그 당시에는 꼭 독후감을 썼습니다. 물론 할게 많지 않은 군대다보니 주말에 사지방에 가서 쓴 이유도 있긴 합니다 ㅎ



그렇게 작성한 독후감 중 다시 보게된 독후감의 책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소설입니다. 100세의 노인이 요양원 창문을 넘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내용의 이 책은 영화보다는 책으로 읽었을 때 더욱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책입니다.




배달을 하다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다시 읽게 된, 5년 전의 제가 쓴 독후감은 신기하게도 마치 지금의 저에게 하는 말처럼 와닿았습니다. 


"23살의 나와 지금의 내가 그리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지만 이렇게 마음 먹었던 내가 지금은 흔들리고 있구나"


이상하지만 5년 전 상병 장구오가 작성한 이 글은 정확히 4년 11개월을 돌아 28살의 회사원 장구오에게 날아왔고, 마치 지금 하고 있는 회사에 대한, 삶에 대한 고민들은 어쩌면 이미 너가 답을 알고 있다고 저에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제가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을 명쾌히도 제시해 주는 것 같아 마치 하나님이 저에게 읽게 하신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미래에 우연히도, 어쩌면 계획 안에서 다시 보게 될 저를 위해, 그리고 혹시나 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실 수도 있는 어떤 분들을 위해 아래 독후감을 기록해 놓겠습니다.



군독후감 7 :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노인


[저자 : 요나스 요나손] 

  우리는 종종 어디론가 떠나버리고만 싶은 생각에 살고있다. 이는 지루하고 나를 지치게만드는 일상과는 달리, 우리가 꿈꾸는 그 곳은 아무 걱정없는 '파라다이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곳이 누군가에겐 놀이동산이고 누군가에겐 저 대륙 넘어 유럽 어딘가 이쁜 도시이고 누군가에겐 우리가 매일 눈으로 보지만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하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곳이 어디든 우리가 이 지루하고 뻔한 일상에서 탈피해 아무 걱정 없이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만은 같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따로 시간을 내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게 다반사이긴 하지만. 



  하지만 여기, 60살, 70살도 아닌 100세 노인의 '알란 칼손'은 본인이 머물고 있던 양로원의 1층 창문을 넘어 답답한 일상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본인의 100세 생일 파티를 1시간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어찌보면 무모하고 어찌보면 자유로운 그 도전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겐 큰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소설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라는 물음을 던져본다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소설에 현실성을 부여할 수는 없는 법! 소설의 존재 이유는 '유희'일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상상만 하던 일을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부여해 현실성을 가미해 그 것을 읽는 독자들의 삶에 조그마한 반항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 소설은 단연 성공적인 소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단연 성공적이고도 바람직한 삶을 살아왔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100세의 나이에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쳐 나와 갱 조직의 거래금인 5000만 크로나(현 환율로 66억!)가 든 트렁크를 훔쳐서 버스에 올라 거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또 그들과 한 무리를 이루고 스웨덴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녀 결국 갱과 경찰이 모두 쫓는 인생이 굳이 아니더라도, 이미 알란 칼손은 그 전부터 대단히 모험적이고 '엄청난' 삶을 살아온다. 1905년에 태어나 2005년에 100세가 된 알란은, 전쟁과 냉전시대를 거치며 그가 잘하는 '(원자)폭탄 제조와 폭발'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스웨덴, 스페인,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이란, 인도네시아, 프랑스 등 전 세계를 누볐다. 그러면서 그는 수용소에 갇힌적도 있고, 본인의 무기로 수용소가 있는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든적도 있다. 또 히말라야도 넘어봤고 그 당시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을 만나며 인생의 여러 고비를 만나지만 우리의 알란 칼손은 언제나 여유롭다. 언제나 자신의 가치관을 놓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물론 언제 어디서든 '정치'얘기를 가장 싫어하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세계 곳곳의 정치인과 친구가 되는 그는 자신의 삶이 다른 이들처럼 성공과 부에 있는 것이 아닌, 단지 본인은 이미 떠났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중요치 않고 다만 삶의 흐름에 맞춰 그 순간을 누리며 사는 인물이다. 



  사실 이책을 보며 줄곧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이 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자 인물인 포레스트 검프는 물론, 그 삶 속에서 줄곧 역사적 인물을 만난다는 점에서 알란 칼손과 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느낀것도 있겠다. 하지만 그 부분은 일부분일뿐, 난 포레스트 검프와 알란 칼손이 무언가를 향해 욕심내지 않고 단지 인생 속에서 무언가를 향해 한발을 내딛은 후엔 후회하지 않고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결과에는 미련없이 대하는 그 태도가 너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포레스트 검프 때와 마찬가지로 알란 칼손의 삶을 나의 삶에 대비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나 또한 일상과 환경의 탓을 들며 내가 진정으로 마음 속에 꿈꾸고 있는 그 무언가를 향해 용기 있게 한 발을 내딛지 못하던 때가 참 많았던 것 같다. 어떤 이유, 어떤 이유를 들며 그 목표를 뒤로 미룬 적이 참 많았다. 그런데 군에 입대한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앞에 주어진 목표를 바로바로 해냈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현재 군인인 나의 삶을 돌아보니 어쩌면 군대에서의 이 시간들이 제대 후 내 삶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시간이 갔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속 빈 강정'같은 군생활이 아닌,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알란 칼손과 같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를 군생활 동안 내실로서 잘 갖춰 나간다면 이는 나 스스로 군생활을 참 잘 했다라고 칭찬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많이 남았고 이 결심이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알란 칼손을 떠올리며 이 군생활을 즐겁고 보람있게 해나가고 싶다.   




이 글을 다시 읽으니 군대에서의 시간을 어떻게든 아끼고 활용하려고 노력했던 그 당시의 제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저 때부터 삶의 중요한 사실들을 깨달아 가고 있던 제가 장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인생과 일의 목적은 돈과 성공이 아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에 미련 없도록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즐기고 누리고 싶은 제게 이 글은, 세상의 다양한 소리들로 인해 흔들리던 그 마음을 다시 잡아준, 선물같은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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