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이상국 - 있는 힘을 다해
글이 잘 되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은 더 많다. 맨날 궁리는 해도 안 되는 날은 그냥 죽상이다. 되지도 않는 글 붙잡고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잡아먹는 게 싫고, 뭐 하는 짓인지 열받는 게 싫어 일부러 정해 놓은 시간 동안만 쓴다. 다 써놓고 보면 드는 생각은 '이 글이 남부끄럽지 않은가'이다. 내가 보기에 쓸 만했던 글이 남이 보기에 읽을 만한 글일지 어째 자신이 없다. 공개하자면 더욱 고민된다. 글은 나의 얼굴인데 매일같이 글을 쓰니 늘 민낯 같다. 그럴 때면 심정은 '휴, 에라 모르겠다'라며 나직이 나오는 한숨으로 가득 찬다. 그래,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 않나.
매일의 기록. 그 이상의 의미 부여는 노우. 홀가분하게 다이어리 쓰듯이 쓴다. 기사나 칼럼을 요약정리한다는 느낌도 나름 괜찮다. 시나 그림을 본 기분 나열은 제법 신선하다. 문학, 비문학을 관통한 서술은 억지로 상대해 본다. 배고프지 않아도 끼니를 챙기듯 글쓰기도 필요조건 따지기 전에 자동 반사적인 습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사고의 언어화를 위한 의식적인 박자감과 무의식적인 리듬감을 놓칠 수 없다는 필사적 '작정'이 나에겐 중요하다. 그래서 때 되면 쓴다.
이상국의 시에 왜가리 한 마리가 있다. 저녁노을 속에 이 새는 저녁 자시러 나와 놓고 긴 목을 한껏 빼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웬걸. 그토록 꼿꼿이 쳐들었던 목을 어느새 물속에 처박고 물고기를 잡고 있다. 멋이 밥 먹여주나.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모양새다. 글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써야 될 것 같은 내 마음과 같지 않고 계속 쓰고 싶지만 원하는 글은 나오지 않는다. 폼도 조금 내고 싶은데 현실은 머리를 처박아야 한다. 뜻대로 세상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쓴웃음도 나온다. 그렇지만 왜가리는 매번 있는 힘을 다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다만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