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의 악착같은 투쟁 끝에 그는 마침내 어떤 사과 하나를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성공적으로 한 모든 것이었다.
*데이비드 로렌스
프랑스 화가 폴 세잔 하면 사과가 떠오른다. 그는 왜 그렇게 사과에 연연했을까? 그 배경에 문호 에밀 졸라가 있다. 둘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한 학교를 함께 다니며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다. 졸라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몸이 약했던 아이로 괴롭힘과 따돌림을 자주 당했고, 그런 그를 세잔이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이에 졸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사과를 건넸다.
이후 졸라는 소설가로 세잔은 화가로 알려지며 30년 이상 절친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지만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이 출간되며 우정은 깨지고야 만다. 당시 세잔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는데 그런 모습을 졸라가 소설 속에서 풍자했다고 판단해 분노를 느낀 것이다.
사과에서 시작된 십년지기,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은 사과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집착으로 이어졌다. 10년 뒤 그는 "나는 사과 한 개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라고 외친다. 화풍은 달라지고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다. 대상을 제대로 보고 자세히 관찰해 그 본질까지 그림에 담아내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불태우게 된다.
이제 그에게 사과는 단순한 사과가 아니다. 그것을 대하는 세잔은 이전과 다르다. 무엇을 바라보는 시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높이를 어디에 두고 관찰하느냐에 따라 사물은 다르게 보임을 터득한다. 빛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색감, 각각의 사물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것들 사이의 거리감이 사라진다. 전체적으로 긴장감과 리듬감을 부여해 균형과 조화를 꾀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고통과 상실을 느꼈던 세잔은 그림 속에 관계의 진정성을 투영하기에 이른다. 본질은 정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하좌우 사방에 있다는 유연성과 주체들의 독립성이 어우러진 가치가 '세잔의 사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