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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Nov 24. 2023

오랜 헤맴 끝에 돌아온 브런치

프롤로그 - 저기, 다시 함께 해도 될까요?

3년 만의 재회


브런치에 글을 쓴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확인해 보니 2021년 1월 13일이 마지막이었다. '글 좀 써라'는 앱알람이 수시로 떴음에도 나는 왜 못 본 척 글을 못(안) 썼을까?


3년 전에 나는 글쓰기 모임을 하며 마치 작가가 된 마냥 글을 썼다. 맙소사, 작가라니. (여기서 작가는 출간 작가다) 앞뒤 따지지 않고 요령 안 피우고 쓰다 보 작가라는 사람이 된 내가 떡하니 서 있을 줄 알았다. 하루하루라는 시간에 쏟는 정성, 글을 향한 진심, 꾸준히 쓰는 의지가 있다면 어디든 내가 원하는 지점에 닿고 무엇이든 내가 희망하는 모습이 될 줄 알았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작지만 빨간 불꽃이 반짝거렸고, 어서 와 뜨거운 순간을 느껴보라고 유혹했다. 나는 그 빛을 반사경 삼아 정신없이 글을 지었다.


세월이 지난 뒤 돌아보면 즐거웠던 간은 힘든 순간을 상쇄시키고 회상은 행복한 기억들 우선으로 떠오른다. 3년 전, 매일같이 의욕을 불사르며 글을 쓸 수 있었던 나 자신이 신기하기만 하다. 모두가 잠든 밤 홀로 앉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그러나 기억의 다른 한 면을 조심스레 들춰보면 실상은 조금 달랐다. 바쁜 낮시간을 보내고 집안일까지 마무리하는 밤 9시경이면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밀려왔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10시가 되고, '자 이제 슬슬 써볼까' 하는 마지못한 심정으로 노트북 앞에 앉으면 11시였다. 일상의 루틴이니까 술술 써질 거라는 건 늘 착각이었고 뭘 쓸지 머리를 쥐어짜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자정 무렵 겨우겨우 짧은 글 한 편을 완성했다. 마감 시간을 넘기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혹은 넘긴 시간에 뻔뻔하게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 날이 이어졌다.


160일 만에 포기


보람과 회의가 동시에 찾아왔다. 글은 애쓴 만큼 기쁨도 커서 쓰고 나면 밥 한 끼 두둑하게 잘 챙겨 먹은 것처럼 든든했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글들을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 자부심 어깨가 으쓱해졌고 느긋하게 읽고 내키면 쓰는 노후를 꿈꾸며 가슴이 벅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희망을 안겨줬던 새빨간 불꽃이 의심의 불씨로 사그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무리 써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딱 160일 밖에 안 써놓고!)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도 없고 잘 썼다고 하는 사람도 없어." (그래 잘 쓰기는 했?)

"이런 글이 어떻게 책이 되겠어? 나무한테 미안한 줄 알아야지!" (아이고, 김칫국 마신다고 나무가 웃겠다!)


아무리 내 조상이 단군이고 그의 모친이 쑥과 마늘 스무 쪽을 먹으며 삼칠일을 버텨 인간이 된 웅녀라고는 하나 160일이라는 시간이 무슨 대단한 인고의 시간도 아니고 그 기간 안에 어떤 서프라이즈 한 결과물이 만들어질 거라고 기대를 한 것일까. 제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그때 나는 약도 없는 중병에 제대로 걸렸던 셈이다. 쓰면 쓸수록 얕은 상상력과 허접한 표현력, 재능 부재라는 한계가 물밀듯이 밀려왔고, 저 위 높은 곳에 포진해 있는 기성 작가들, 혹은 참신하고 개성 있는 출간 작가들의 글과 나의 글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질투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발끝 아니 손끝도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이 덮쳐왔다. 감시간은 목을 조여 왔고 하기 싫은 숙제가 된 글쓰기에 몸서리를 쳤다. 마음이 움츠러들고 몸을 사리니 글은 더 이상 써지지 않았다. 글감은 떠오르지 않았고 문장은 부끄러웠다. 나는 뒷걸음질 치는데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열심히 부지런히 쓰는 사람들만 보였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갑자기 공황이 왔다. 멀미가 나듯  불안이 스멀스멀 려왔고 오한을 느끼며 서늘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결국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도 브런치에서도망쳤다.


떠돌이 섬의 오랜 방황


매일쓰기를 접었다고 해서 글에서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 내 영혼은 끊임없이 책을 탐했고 정신없이 책을 읽으면서도 글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내 것으로 다 빨아들이고 말겠다는 의욕에 사로잡혀 발췌를 했고 이 아픈 만큼 공책의 권수는 늘어났다. 그런데 북 다이어리에 읽은 책 목록이 빼곡해질수록 생각은 굳어졌다.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책과 글이라는 사실을.  읽기의 끝은 쓰기임을,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글쓰기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블LOG, 얼굴북, 인별그램! 그 끝도 한계도 알 수 없는 망망한 사이버의 바다. 찬란할 수도 적막할 수도 있는 공간에서 나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경직된 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고 단단히 조였던 정신은 나사가 느슨하게 풀리는 순간 일렁이는 검푸른 물결에 온몸을 내맡긴다. 정처 없이 흐르는 자유와 고독은 어느 순간 신성한 작은 영역을 온전히 인식한다.

여긴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나의 작디작은 섬! 소박한 등대가 캄캄한 어둠을 희뿌옇게 밝히고 오도카니 솟은 언덕 위의 유리로 된 투명한 집은 펄떡이는 심장과 내밀한 창자까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상상의 내면을 훑고 섬세한 감각을 핥으며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고,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며 무탈하다는, 사소한 안부를 띄운다.

'똑똑똑' 경쾌하게 문을 두드리는 이, "안녕" 하며 명랑하게 인사하는 이, 오며 가며 마주치는 이 하나 없는, "여보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나의 목소리만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인, 이곳! 나는 지금도 존재의 근원과 삶의 흔적을 남기며 살뜰하게 집을 지킨다.


몫 보다 나머지의 마음


이대로 안 되겠다. 혼자 사는 세상이라지만 혼자라는 느낌은 철저히 외롭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인간 하나를 춤추게 하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자처한 고독은 지치는 우울이 되고 열심히 나를 찾아가던 길은 막다른 골목이 되다. 별것 아닌 내 글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어주고 허물이 빤히 보여도 칭찬 일색이던 글쓰기 모임이 그립다. 작은 흔적에 미소 짓고 사소한 댓글이 마음을 넉넉하게 감싸주던 플랫폼이 간절하다. 뜨거워도 건조하기만 한 히터 바람이 아니 서닿아 있기에 따뜻한 온기가 은근히 전해지는 엉뜨가 필요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한 발짝 다가가야 할 터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누가 먼저 다가오길 바라던 마음을 반성한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일방통행인지 양방통행인지 늘 가늠이 안되던 풋내기였던 나는 일상의 관계에서 더치페이가 깔끔하고 속 편하듯 마음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깍쟁이기도 했다. 언제나 딱 맞아떨어지는 계산식으로 서로의 '몫'을 나누면서도 '… 나머지'에 해당하는 마음의 잔존이 내내 찜찜했다. 

자연에는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듯 인간에게도 마음대로 안 되는 영역이 있다. 부딪혀 깨지고 다쳐 아프더라도 잃는 있으면 얻는 것도 있더라는 이치를 터득하고, 오고 가는 마음의 결에 서로가 충분히 젖어들어야 '통通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망망대해에 저 혼자라고 생각했던 섬은 '… 나머지'의 해류를 타고 '… 나머지'가 주인이 되는 시공간으로 흘러든다.


블LOG, 얼굴북, 인별그램! 돌고 돌아 이제 브런치에 머문다. 이곳은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는 사람들의 세상! 살아 숨 쉬는 순간순간을 깊은 우물 속 맑은 샘물 퍼올리듯 순수하게 글을 긷는 이들 뒤로 가서 조용히 선다. '그래 잘하고 있어, 그냥 그렇게 하는 거야' 엉덩이 토닥토닥, 머리 쓰담쓰담해 주며 나는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마음 풍선을 띄운다. 인정을 기대하는 섣부른 속단과 책이 인생의 답이 될 거라는 단정을 멀리 날려 보낸다. 나의 글과 다른 이들의 글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 어느새 상승 기류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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