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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Dec 08. 2023

나는 세상과 교제 중입니다

기승하지 않는 마음의 꽃자리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네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 구상 「꽃자리」중에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쁩니다'. 살면서 하면 할수록 좋은 말이다.

하는 사람은 흔쾌하고 듣는 사람은 흡족하다. 맨날 맨날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말 한마디에 선한 눈빛과 미소 띤 얼굴, 향기로운 분위기가 피어오른다. 그렇게 오고 가는 '감정'과 '관계'들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싹튼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진짜 가, 내가 잘 안다고 하는 말들은 정말 맞게 하고 있는 것인가, 너는 네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어쩌면 착각이나 모두 희망사항이 아닐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요즘 내 머릿속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실격」 요조의 수기 첫 문장이 각인되어 좀체 지워지질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전방만 아니라 두루 방향을 살피며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여긴 삶인데 밥 숟가락 들다가 별안간, 차 안에서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커피 한 모금 삼키다가 문득, 책을 읽다가 멍해지는 그때, 앞뒤 맥락도 없이 과거의 어느 순간순간이 막 찍어낸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요조의 모습에 내가 겹쳐지며 너무나 생생한 '부끄러움'에 사로잡힌다.  


요조는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면 할수록 드러나는 본모습에 좌절했다. 되풀이되는 결여감으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완전히 패배했다고 느꼈다. 타협하지 않았고 거짓된 위장도 없었건만 결국 자발적 고립을 택하고 말았다. 예민한 감수성과 남다른 자의식은 나약한 자기 연민으로 무너졌.


변명일까, 자기 합리화일까, 나는 요조였다. 무의식이 자꾸만 그를 불러낸다. 모순된 인간이라서 이해할 수 없는 삶이라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구상 시인은 삶에서 부끄러워할 일이 없는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1919년에 태어나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참전했고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언론 운동을 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정계입문을 권할 때 거절을 했을 정도로 올바름에 대한 올곧음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이중섭 화백, 오상순 시인과 깊은 친분을 맺었는데, 시의 첫 연에 나오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오상순 시인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건네는 인사이기도 했다. 구상 시인은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며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너는 매사에 기승을 하지 말라."


그 말은 나의 심장으로 날아와 정통으로 박힌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가지만 사람이 남긴 흔적은 어딘가에 분명하게 남는다.

 



시에 '꽃자리'라는 표현이 있다. 꽃이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는 자리다. 우리네 앉은자리는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맺혔다가도 순식간에 지고 마는 꽃자리였다. 그걸 모르고, 아니 너무 잘 안다면서 짧디 짧은 생의 자리를 가시방석으로 만든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계속 매여 있는 줄 모르고 그는 지금도 누군가를 동아줄로 엮고 있는 걸 모르고 나는 내가 만든 감옥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꽃에 가시투성이라고 한다.


시인은 매사에 기승하지 말고 자신을 알아 자기 힘으로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로 보이고 보람과 기쁨이 자연스럽게 따른다. 그건 어떤 일에도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나로 인해 가능한 일이고 그 모든 순간이 모이고 모여 나의 '꽃자리'가 될 터이다. 가시는 필연이며 꽃을 지켜주니까, 꽃은 어떤 부대낌 속에서도 활짝 피어나니까, 온몸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니까, 누구의 앞길에 흩뿌려져 눈부신 꽃길을 만들기도 하니까. 너와 나의 자리는 아름다운 꽃자리여야 한다.




고인이 된 시아버님이 불편한 몸으로 안간힘을 다해 뭔가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제사상 앞에서 뻣뻣한 긴 다리를 구부려 접고 단단하게 굳은 허리를 겨우겨우 수그려 끙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삐뚜름하게 엎드려 절을 하신다. 그때 나는 '힘들면 절은 안 하셔도 되는데', '어머님이 보고 싶긴 하실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곧 당신 차례가 될 죽음을 목전에 뒀음에도 (당시 아버님은 혈액암 투병 중이셨다) 아무 말씀 없이 할 일을 다하는 모습에 그만 울먹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구상 시인이 했다는 '기승을 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고 이란 극성맞고 악착같은 한때를 폭풍우처럼 보내고 잔잔한 수면이 되어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묵묵히 마음을 쏟는 버젓함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신경의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가 남은 힘을 모아 마지막으로 쓴 책의 제목은 「고맙습니다」였다. 그는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읽고 쓰고 운동하고 여행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낌없는 시간을 보냈다. 마흔이나 쉰에는 알 수 없는 시간, 여든 살쯤 되니 한 세기가 어떤 시간인지 상상할 수 있었고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세상과의 교제'를 허락해 주고 즐기다가 갈 수 있게 해 준 삶이었기에 기뻤고 반가웠으며 고마워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가진 몸의 역사를 고스란히 살아 냈다는 맑고 또렷한 감각을 얻기까지 억지스러운 다급함에서 벗어나 굳이 최선을 다할 필요 없이 여유와 자유를 누렸다는 그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다만 그 시간을 짐작해 본다.




아버님이 아주 천천히 공을 들여 절을 하시던 모습과 연로한 올리버 색스가 손에 잡기도 힘든 몽당연필을 쥐고 전력을 다해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진 한 장,  인간실격 요조의 알 수 없는 인생과 사라져 버린 만년의 시간을 차곡차곡 포개 내 몸 깊숙이 담는다. 찰나의 인생이 그토록 순식간에 졌다.


여기 원만한 내가 서있다. 진심으로 반갑고 고맙고 기쁜, 그래서 기승 없는 마음으로 세상과 교제를 맺는다. 그 마음이 피고 지는 자리는 나의 꽃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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