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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Dec 15. 2023

4와 8 이야기

슈퍼 그리고 아빠

무심코 기억나고 자꾸만 눈에 밟히는 숫자가 있다. 하나는 4, 또 하나는 8이다.


일단 4는 죽을 사死. 숫자들 가운데 이상하게 자주 내 눈에 띄었다. 몇 시인지 궁금해서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숫자가 바뀌면서 4시 44분이 되었다던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4시 44분이 찍혀있었다던가. 어쩌다가 내 핸드폰 번호에 4가 두 개나 있는지 한 번씩 영문을 모르겠고, 순서를 정하기 위해 제비 뽑기를 할 때면 이상하게 4가 많이 걸리는 식이다. 왜 내 주변에 4가 이렇게 서성거리는가.


그러고 보니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보통사람들 보다 많이 떠올리며 사는 것 같다. 어느 토론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내 말을 듣던 한 선생님이 왜 굳이 죽음을 생각하며 사느냐고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때 나 역시 진지하게 고민을 했고 나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반추는 삶에 대한 애정과 비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바니타스 미술'이 유행했다. ('바니타스'란 라틴어로 '헛되다'라는 뜻으로 성경의 전도서 1장 2절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라는 글귀로 유명하다.) 바니타스 미술에는 유독 두개골과 모래시계가 많이 등장하는데, 당시 사람들은 소품처럼 그려진 그것들을 보면서 죽음을 늘 염두에 두었다. 인간의 삶은 헛되고 헛되니 짧은 생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결함을 찾아내고 미덕을 생활화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이라는 에세이에서 "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질, 즉 먼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했듯이 나는 내 몸이 '가장 민주적인 물질'이 될 그날을 떠올리며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불안을 지우고자 했다. 한낱 '먼지'가 될 그날을 생각하며 사람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와 지위에 대한 단순화된 관점을 떨쳐내고 싶었다. 관계 속에서 어떤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비틀린 자아가 되지 않도록 기를 썼다. 그러니 '4'는 반려로서 늘 나의 곁에 머물렀던 셈이다.


이젠 '8'에 대한 이야기.


내 나이 10대를 지나 20대 초반까지 아빠와 엄마는 슈퍼마켓을 하셨다. 지금은 시골에도 편의점이 있는 시절이지만 그때만 해도 골목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구멍가게 같은 동네 슈퍼였다.


가게 이름은 참 심플하게도 88슈퍼!

왜 88이냐면 1988년 올림픽이 개최된 해에 가게를 차렸기 때문이다. 


그해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은 한국전쟁 이후 불과 30여 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성과를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전 세계적인 행사였다. 냉전의 시대에 아시아의 작은 분단국가가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과시가 되었고, 86년 아시안 게임 종합 2위에 이어 올림픽 4위라는 놀라운 성적은 이제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되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했다. 아빠는 성공리에 열려 판을 바꿔놓은 그 해의 올림픽이 자랑스러우셨다.


하지만 짐작건대 우리 아빠라면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빤히 드러나는 숫자 두 개를 달랑 고르진 않으셨을 것 같다. 확연히 드러나는 뜻과 안에 숨겨진 함축적인 의미를 심사숙고해 정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궁금해도 여쭤볼 수 없지만 대신 엄마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시안 게임이 열리기 전 아빠는 안정된 대기업체에 다니며 한창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다. 어린 세 남매 먹여 살리느라 알뜰살뜰하게 가계를 일구며 부지런히 사셨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큰 사고를 당해 수술과 입원으로 오랜 시간 병원에 누워 계셨고 퇴원 후에도 집에만 계셔야 했던 아빠는 나약해진 몸과 심신의 무력감을 떨치고 일어나 가게를 차리셨다. 올림픽의 찬란한 불꽃은 새로운 출발을 밝혀 주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으며 다시는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거듭하셨다. 


'8'이라는 숫자는 아빠의 오뚝이였다. 쓰러질 듯 말 듯 제아무리 기우뚱기우뚱해도 다시 우뚝 서는 꿋꿋한 오뚝이가 되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8' 옆에 있는 다른 '8'은, 신체 사지 멀쩡하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뇌수술을 받아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고 생때같은 어린 자식들 떼어 놓고 남편 간호에 매달리느라 몸도 마음도 나무젓가락처럼 말라갔던 엄마의 분신 오뚝이였다.


돌이켜보면 사춘기의 구성 단계 중 위기의 오르막길을 내달려 절정의 꼭대기에 치닫고 있던 나는 이해심이라곤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던 아이였기에 자세한 내막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부끄러워만 했다. 뜻이나 어감이 좋은 말, 왠지 있어 보이는 말 다 놔두고 88슈퍼가 뭐냐고, 올림픽 연도가 왜 가게 이름이어야 하냐고, 촌스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쌀쌀맞은 나의 말에도 아빠는 허허허 웃으며 새벽같이 일어나 가게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으며 88하게 가게를 꾸리셨다. 짜증내면 얼굴이 미워진다고 즐겁게 웃으며 살자고 늘 말씀하셨다. 가게에 있는 건 주인이 먼저 맛을 알아야 팔 수 있다면서 새로 들어오는 과자와 음료수는 아이처럼 뜯어 전부 다 맛을 보곤 하셨다. 빙그레 웃음기 번진 얼굴로 나에게 어서 먹어보라며 건네주시던 아빠였다. 슈퍼에 오는 애들 마다 왜 그렇게 예쁘냐는 타령, 물건을 납품하는 장사꾼들이나 어른 손님들한텐 왜 그렇게 안 늙냐고 얼굴이 맨날 그대로라며 내 귀엔 한없이 실없는 농담을 건네시던 아빠. 환한 얼굴로 "나는 죽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아빠는 운동을 하러 공원에서 갔다가 공중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으셨다. 혼자 겨우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신 그날 밤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아는 아빠의 얼굴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몰랐던 아빠의 얼굴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당신의 죽음 속에 묻혀 있던 얼굴이 수천수만 개가 되어 내 기억 속에서 부활한다. 이젠 내가 얼마나 소갈머리 좁고 인정머리 없는 딸년이었는지 내 얼굴이 점점 선명해진다. 철없던 아빠의 못난이는 '4'와 '8'을 앞에 두고 목놓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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