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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Jan 27. 2024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삶의 역설적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오스카 와일드, 민음사


지난해 청룡영화상을 떠올리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영화인을 위한 행사였지만 가장 이슈가 된 건 가수였다. 박진영, 그에 앞서 무대를 선보였던 걸그룹 유진스. 두 무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배우들과 시청자들의 반응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방긋방긋 싱그러운 웃음과 갓 피어난 한 떨기 꽃과 같이 화사한 외모, 유려한 곡선의 몸매, 터질 듯이 발산하는 젊음의 향연에 엄마미소, 아빠미소, 연인미소를 짓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반면 박진영의 모습은 왠지 처연했다. 짙은 화장과 과한 의상, 컨디션 난조로 인한 불안정함, 언짢게 만드는 기괴한 표정까지, 파격적인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놀라워 입을 다물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미美란 눈을 통해 감각하며 좋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해롭지 않은 것이자 필요한 것이 된다. 좋은 느낌이니까. 그런데 아름다움을 추구한 유미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라고 했다. 아름다움이란 두려운 쾌락이 되고 필요 이상의 욕망을 수반하게 되지만 쾌락 추구와 욕망 실현은 인간의 자연스럽고 반사적인 행동이 아니겠는가. 만족은 불안의 부재, 쾌락은 고통의 부재일 테니 만족과 쾌락은 이음동의어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서 만족과 불안, 쾌락과 고통 또한 필수 불가결의 조건이 성립된다.


유미주의(탐미주의)는 미적 향수나 미적 형성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으로 향락주의에 심취했던 에피쿠로스 학파를 시작으로 문학사적으로는 오스카 와일드에 이르러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한다. 정신보다는 감각적인 것을 중시하고 미를 진眞과 선善 위에 두며 때로는 악惡에서까지 미를 발견하는 점을 특징으로 하지만 미적 기준에 있어 극단적인 편향성을 벗어나 보다 자율적이고 단순한 삶의 질을 지향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에 완성한 최초 원고의 번역본인 이 책을 덮으며 정중원 화가가 그렸다는 표지 속 인물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본다. 예전에 '열린책들' 출판사 판본을 읽을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의 동성애, 그가 열렬히 사랑했다는 앨프리드 더글러스라는 인물. 두 사람이 나란히 찍힌 사진도 한참 바라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작품 속 도리언과 바질의 관계와 참 흡사하다. 성향과 비극적 운명, 안타까운 최후까지 말이다. 수려한 외모가 눈길을 사로잡던 도리언의 초상화는 책의 각도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니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내가 잃어버릴 아름다움을 어째서 초상화는 영원히 누리는 건데? 매 순간 시간은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초상화에 주겠지요. 아, 그 반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뀌는 건 초상화고 나는 항상 지금 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1p)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있는 거라곤 몸뚱이 하나일지라도 충분할 수 있는 건 젊음, 그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가져서다. 그런데 싱싱한 육체가 펄떡거리며 빛을 뿜어낼 때에는 가치를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어떤 자각이 젊음을 애타는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건 바로 노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쇠퇴할 수밖에 없는 신체 앞에서 태연한 인간은 없다. 세월의 무상함과 육체의 유한성이 필요충분조건임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상실의 두려움과 쾌락추구의 집착이라는 올가미에 덜컥 걸려들고 만다. 


흐르는 세월이 가져오는 점진적인 늙음이 시간이 만들어준 자연스러움일 텐데 젊음의 정점에 선 도리언은 이를 외면하고 순간의 경이로움을 좇아 비도덕적인 쾌락과 열정에 취해버린다. 급속도로 타락한 그의 영혼은 향기로운 젊음의 아름다운 가면을 뒤집어쓰고 대신 바질이 그려준 초상화가 추악한 노화를 맞게 된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건 영원히 안 죽는 것, 늙는 것보다 처참한 건 박제된 아름다움이다. 도리언은 철저한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스가 되어 삶을 쾌락하고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홀딱 반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대신 끔찍한 몰골로 서서히 늙어가는 초상화를 마주하며 죽음으로 돌진한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건 속물적인 것이에요. 진정한 수수께끼는 보이는 것에 있지, 보이지 않는 데에 있지 않아요." (45p)


오스카의 촌철살인의 경구들,  오스카리아나라고도 부르는 문장들이 쾌락주의자 헨리 경의 한 치 혀 속에서 발화한다. 그 힘이 어찌나 강렬하고 달콤한지 도리언은 초상화와 자신의 영혼을 걸고 악마의 거래를 해버린다. 


청룡영화제 이야기를 했듯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눈빛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는 말은 오히려 인간이 선한 척을 하는 속물적 근성에 불과하다는 헨리 경의 말은 황량한 바람이 되어 얇디얇은 도리언의 영혼을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미적 외곬로 치닿게 한다.


"모든 영향력은 비도덕적이에요. 왜냐하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강요하는 거니까요. 영향받은 자는 자기만의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열정을 불태우지 못하게 돼요." (38p)


나는 헨리 경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는 도리언의 순진한 매력을 숭배하는 바질과 때 묻지 않은 도리언의 무구한 영혼에 본때를 보이고자 한 걸까. 헨리 경의 비도덕적인 영향력은 도리언의 영혼을 잠식해 외모에 집착하게 했고 지성이 깃든 영혼이 아니라 원초적인 욕망과 감각에 연연하게 만들어 버린다. 


헨리 경은 육체와 영혼의 조화를 위해 어떻게 감각하고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지 도리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잘못된 영향력은 맑은 눈빛과 수줍은 미소, 발그레한 홍조를 띤 순수 청년 도리언을 전혀 다른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 얼마나 무서운 설정인가. 한 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뽑고 인간성을 앗아가 버리는 타인의 강력한 힘이란!


"헨리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내다보았다. 주홍빛 섞인 금빛 석양이 맞은편 집들의 위층 창문을 강타하고 있었다. 유리창이 가열된 금속판처럼 붉게 빛났다. 그리고 먼 하늘은 바랜 장밋빛이었다. 그는 강렬한 색채로 빛나는 젊은 도리언 그레이의 생을 떠올렸고,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졌다." (77p)


나와 당신의 삶처럼 도리언의 생도 되돌릴 수 없다. 헨리 경이 강렬한 색채로 빛나는 현재를 떠올리며 반문했던 도리언의 최후는 너무나 끔찍했다. 우리는 모두 내 생이 어떻게 끝맺음할지 궁금하다. 스스로를 잃지 말 것, 자기 파괴 없이 영혼의 추락을 막을 것, 내 초상화의 변천 과정을 떠올릴 것, 지금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것,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밝힐 것. 아마 그것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는 에피쿠로스의 건전한 쾌락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삶을 나의 초상에 척하고 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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