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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Feb 03. 2024

허기진 퇴각이 온다면

사랑과 욕망, 현실과 이별의 감각적 성찰

『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녹색광선


지금 행복한가!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서? 아니면 주머니가 불룩 가진 게 많아서?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이 부족해서?


나는 사랑의 충만과 경제적 윤택 중 무엇을 더 욕망할까. 둘 다면 모를까 하나를 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책은 고민해 봤자 어차피 답은 뻔하지 않냐는 식의 씁쓸한 종결을 보여준다. 자존심 구겨질까 봐 혹은 낭만을 잃어버릴까 봐 말할 수 없었던 바로 그 답 말이다.


책을 읽고 느낀 소회를 가볍게 풀어보자면,

- 소유욕(물욕)이 없다는 건 이미 넘치도록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사실에 무감각할 뿐이다.

- 욕망이 결핍을 느낄 때 사랑을 잃는다. 당연한 것들의 어긋남이 거듭 되면 어쩔 수 없는 퇴각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 무소유와 무책임은 양립할 수 없다. 유년기의 무책임은 특권이지만 어른이 되어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무책임하다면 그것은 책임과 의무를 따르지 않는 방종이 될 수 있다.


서른 살의 아름다운 여자, 루실의 어린아이 같은 정신연령 즉 무감각한 무책임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동의어, 제로인 경제관념은 소유욕 없음과 유사어, 무위는 행복 추구를 위한 자질,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은 고독한 희열의 당위였다. 그것은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 샤를이 루실의 3무(무위, 무책임, 무사태평)를 '철없음'으로 보지 않고  '여자의 매력'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루실은 샤를이 제공한 드레스 룸과 세련된 가구, 가정부 딸린 아파트를 (젊고 미남이지만 가난한) 앙투안의 10평 원룸 아파트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소유는 자신의 미덕이라 여겼고 앙투안과의 사소한 만남이 절정의 욕망으로 치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만 프랑 짜리 디올 드레스를 일상으로 입던 그녀가 10만 프랑의 월급을 받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자 그토록 사랑스럽던 '무위'의 기질은 '무분별'의 낙인으로 추락한다. 결국 사랑으로 달려가던 욕망은 패배의 붉은 신호에 걸려 급제동한다.  


이 책에 나오는 두 번의 신호! 그것은 허기진 퇴각이었다. 허기지다는 건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바, 간절히 바라거나 탐내는 마음이 생기거나 몹시 굶어 기운이 빠질 때 쓴다. 그러므로 처음의 신호는 간절히 탐하는 것을 위해 전부 내던지는 사랑의 퇴각이었고 그 후에 기운이 소진되어 모두 되돌리고 싶은 현실적 퇴각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매혹되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소유하고 싶어지는 충만한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폭풍 같이 휘몰아치던 감정은 현실의 단단한 벽에 부딪혀 서서히 김이 빠지고 얄팍해진 마음으로 예정된 이별의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 쓸쓸히.

     

알코올, 마약, 도박, 스포츠카 등 온갖 중독과 자유분방한 연애사로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몸소 체험(?)하던 사강이 이혼과 아들의 출산을 겪고 이 책을 발표할 서른 즈음에 잠깐 냉정한 성찰을 얻은 걸까. 아니면, 이상의 추구 끝에 현실적인 타협과 손을 잡은 걸까. 과거와 현재, 미래에 가로놓인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다가 사랑보다 적나라한 건 현실이고, 권태보다 무서운 건 두려움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합리화가 안타깝고 뻔뻔하지만 인간이라서 처할 수밖에 없는 고독의 비애가 그만큼 짙어서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 특유의 섬세한 내면 묘사가 바람 앞의 불꽃처럼 위태하면서도 황홀한 빛을 자아내고 펜 끝에 실린 감탄스러운 감정 표현은 화살의 끝이 되어 전율을 일으킨다. 오늘의 내가, 오늘이 있기까지의 내가, 앞으로의 내가 패배하여 맞이하게 될 신호가 무엇이며 퇴각의 순간 무엇을 떠올리게 될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발췌>------------

* 1부 봄

루실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서 침대에 누웠다. 햇살이 카펫 위에서 급속도로 수그러들었고, 길가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그녀는 두 달 전에 방 안에 스며든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바람처럼 살랑거리며 방 안에 감도는 바람이 아니라 대담하고 날랜 바람이었고, 이 바람이 솔솔 잠이 오게 하는 것과 달리, 번쩍 잠을 깨게 하는 활기찬 바람이었다. 이 두 바람 사이에 앙투안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124p)


* 2부 여름

거리엔 가느다란 빗줄기가 힘없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앙투안은 빗물이 미지근하리라 짐작했다. 어쩌면 눈을 뜬 채로 조용히 울고 있는 루실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짭짜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루실이나 구름에게 이 눈물의 이유를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여름이 끝났고, 그것은 그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194p)


* 3부 가을

그가 "집에서"라고 장소를 말했을 때, 루실은 푸아티에 가의 원룸은 단 한순간도 떠올리지 않았다. 푸아티에 가에 있는 건 방이었다. 그건 집이 아니었고, 집이었던 적도 없었다. 설령 그곳이 지옥이 뒤얽힌 천국이었을지라도. (248p)


루실은 걸어서 돌아왔다. 집으로, 샤를에게로, 고독에게로. 그녀는 자신이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든 삶으로부터 영원히 박탈당했다는 것을 알았고, 박탈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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