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단조로운 글이 내게로 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19p)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흥미진진한 것》혹은《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글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다. (20p)
나는 천천히 쓰고 있다. 사실과 선택의 집합에서 한 인생을 잘 나타내는 실타래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면서. 조금씩 아버지만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 단어와 문장에 최대한 가깝게 써야 하는 이런 작업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그저 그 단어와 문장이 아버지가 살았던 세계이자 내가 살았던 세계이기도 한 곳의 한계와 색깔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40p)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비가 와도, 해가 쩅쨍해도, 두 강 사이를 건너는 뱃사공이었다. (100p)
나는 감히 이렇게 설명해보려 한다.
글쓰기란 우리가 배신했을 때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장 주네
"아버지의 존재로 소설을 쓰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쓰면 인물을 창조하게 됩니다. 이 경우는 제 아버지가 되겠죠. 나는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렸을 겁니다. 분명 그를 미화하겠죠. 많은 것들을 미화했을 거예요. 마치 내가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버지의 삶을 전혀 나타내고 있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