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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Feb 23. 2024

나는야 달나라 종교인

정월대보름이다, 소원 빌러 가자!

나는 자연을 믿는다. 불교나 기독교, 천주교가 아니라 대자연을 향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내게 종교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무교라 할 테지만 정확하게는 토속 신앙을 가진 셈이다. 보통의 경우 나이가 들고 집안에 힘든 일이 생기거나 병을 얻어 심신이 약해지면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계속 자연을 의지하며 살지 않을까 싶다. 종교에 무심하다거나 불신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는 주말아침마다 교회에 빠지지 않았고 성가대원을 하며 찬송가를 부를 때면 늘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오르곤 했다.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것, 세례를 받을 때 성체를 입속에 영하는 모습 같은 걸 거룩하게 생각했으며 진지하게 성경책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산사에 가면 명상하듯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 템플스테이에 여러 번 간 적이 있고 108배를 하며 고요 속 안정을 얻기도 했다.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을 빈틈없이 붙이거나 열 손가락을 엇갈리게 꽉 끼어 손깍지를 하면서 기도를 올리고 합장을 하는 시간이면 몸가짐이나 언행을 삼가야겠다는 생각과 스스로를 낮추고 비워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우상을 섬기고자 하는 건 아니다. 미신 같은 비과학적인 것들에 사로잡히기도 싫다. 다만 내가 자연을 신성시하는 까닭은 인간이 몸 담고 살아가는 세상과 인간 존재 자체가 자연에서 비롯되었으며 죽음 이후 우리의 몸이 다시 돌아가는 도 자연이고 만물에 그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진실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가치관과도 연관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사회에서는 예부터 자연에 의지하며 깊은 유대를 맺어왔기에 그것을 숭배하는 것은 종교의 역할로써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보듯 특정 동식물과 자연을 신성시하는 토테미즘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부족 신앙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무당 같은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는 샤머니즘을 비롯해 산천초목이나 장승, 서낭당처럼 무생물에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정령숭배와 초자연적인 현상을 높이 받드는 애니미즘도 보편적인 민족 신앙이다.

이렇듯 토속 신앙인인 나는 자연계에 대해 두루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 유독 달을 추앙한다. 정월대보름이나 추석 보름에는 달맞이를 하며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하고 "달님!"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우러러보고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빈다. 휘황찬란한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선을 맞추고 있자면 생명의 원천이 되는 순수한 기운과 간절한 바람을 이룰 정기가 여과 없이 흡수되는 기분에 젖어든다. 달은 광활한 우주 속 작은 행성인 지구의 주변을 도는 자연위성에 불과하지만 꽉 찬 만월은 내게 그 이상의 신비한 뜻을 품고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SF 고전 <우주 전쟁>이 출간되던 19세기 후반까지도 사람들은 화성에 운하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니 달 표면을 보며 계수나무와 절굿공이를 찍는 토끼를 떠올렸던 옛사람들의 낭만 어린 정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17세기에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했던 갈릴레이는 검게 보이는 지역에 물이 있을 것이라며 달의 바다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 (사실 그곳은 주변보다 낮고 건조한 평지일 뿐이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착륙해 닐 암스트롱이 고요의 바다에 발자국을 찍기까지 그 오랜 세월 동안 달은 무한한 상상력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8시 무렵, 마지막 유인 우주선이었던 아폴로 17호가 달에 발을 디딘 이후 52년 만에 미국 최초의 민간 탐사선 '오디세우스'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우리는 아직도 달을 노래한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 윤극영의 동요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로 이어지는 전래동요 속 달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상관없이 여전히 꿈과 희망, 풍요, 다산, 가족의 행복, 사랑을 빌어 마지않는 자연의 종교다. 우리네 인생에서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막막한 세상을 사는 나약한 한 인간이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물으며 진심을 다해 길을 찾고자 하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보듬으며 번뇌와 갈등, 절망을 다스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 안에서 인간이 얻는 자유와 위로, 안식과 평화는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주는 합일점이 아닐까. 내일은 정월대보름이다. 밤 9시 30분에 가장 크고 둥글다는 나의 고결한 달님을 만나러 갈 생각에 내 마음은 벌써부터 설레고 경건해진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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