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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Feb 09. 2024

어제의 아가씨, 아줌마 적응기

웃긴 착각과 슬픈 포기, 다시 빙그레 웃기

그때만 해도 '아가씨'라고 불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요즘 시대에 '아가씨'의 기준이 뭘까. 국어대사전은 시집갈 나이의 여자를 일컫거나 처녀 혹은 젊은 여자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탱탱한 피부와 맵시 있는 몸매, 센스 넘치는 옷차림으로 젊어 보이는 여자는 나이와 결혼에 상관없이 일단 아가씨로 보일 수는 있겠다. 그래도 아가씨라고 불릴 수 없는 엄연한 상황이란 게 있으니 나는 결혼을 했고  남편과 아이가 있는 공식적인 아줌마였다. 그런데 아줌마라 불리는 것이 왜 그토록 낯설었을까.


나는 너무 오래 아가씨로 살았다. 서른 중반이 다 되도록 싱글이었고 남자친구는 생길 기미도 안 보였으니 영원히 아가씨로 살 줄 알았다. 과장을 살짝 보태, 어느 날 옆에 남자가 누워 있었고 다음날 눈 떠 보니 아이가 생겨 결혼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아가씨라고 아니 그렇게 보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바야흐로 아가씨는 아줌마 시대를 맞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시간이 여유로워지자 집순이는 자유부인이 되어 나돌아 다녔는데 그 무렵에 나는 결혼 후 처음, 아니 태어나 최초로 "아줌마!" 소리를 들었다.

"아줌마! 아줌마! 뭐 떨어뜨렸어요."


아파트 골목을 내려와 큰 길가로 접어드는데 어떤 아저씨가 자꾸 외치는 소리가 났다. 누굴 부르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던 나는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는 꿈에도 몰랐지만 아저씨의 눈은 정확히 내쪽을 향하고 있었고 그때 나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은 얼씨구,


 "저, 아줌마 아닌데요?"


절씨구, 아저씨는 뭐라 대꾸도 못하고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더니 묵묵히 가던 길을 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와글와글 속으로 아우성거리던 말들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가 되었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벌써 그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가 왜 아줌마로 보이는지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심산으로 거울 앞에 섰다.


 '아! 그렇게 보였겠다. 요즘 아이 키우느라 신경을 안 썼더니 백옥 같은 피부가 갔네 갔어. 앞으로 외출할 때 화장은 무조건 필수! 날렵하던 옆구리 살도 이렇게 불었구나. 아이 낳고 먹기만 했으니 당연해. 운동을 해야지. 다이어트도 필수!'


충격의 여파는 "그래도 얼굴이  동안童顔이야"라는 말을 수시로 듣고도 극복하지 못했고 마흔을 넘기자 뭘 어떻게 해도 아줌마로 불리는 날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차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일상 다반사가 되자 나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적응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 번씩 누가 "아줌마!"라고 부를 때면 호통이라도 날아온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버리는 나란 뇨자. 남편이 그 말을 입에 담을 땐 "제발 아줌마라 부르지 마!" 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어쩔 수 없는 뇨자.




마흔 중반이 되었을 무렵 서울 나들이가 있어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경의선 국철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다가와 물으셨다.


"아줌마, 3호선 어디서 갈아타요?"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던 나는 찬찬히 고개를 들고 답해 주었다.


"저 계단 보이시죠? 올라가셔서 우측으로 쭉 이정표 따라가시면 나와요."


서둘러 걷는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중요한 걸 깨달았다.

나는 '아줌마'란 말에 심적 변화가 1도 없었다는 사실을. 그 단어가 이젠 아무렇지 않고, 더 이상 동요하지 않는다는 현실 자각. 내 안의 아가씨가 완전한 아줌마가 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확신에 그만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애써 지켜오던 자존심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상실감, 허탈감, 우울. 이런 기분, 해가 갈수록 더 두텁게 쌓여갈 테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잃어가는 걸 잊어야 하과정인가 봐. 에혀 이렇게 또 잃고 잊으며 하루를 사는구나!


 '굿바이 아가씨!'를 받아들이니 좀 울컥했지만 속은 시원했다.




어느덧 나는 쉰 살이 되었다. 아줌마가 되기 싫었던 아가씨는 이제 사진 속에서 해사하게 웃고 있고, 언감생심 아가씨를 꿈꾸던 아줌마는 나이 든 얼굴이 미워서 사진을 안 찍는다. 그러나 다른 건 다 포기해도 꼭 간직하고픈  마음은 바로,


"내 안에 아직 아가씨 이따아!"


아가씨의 말간 눈빛과 귀욤발랄한 생기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되어도 변치 않을 나란 뇨자.


'포에버 아가씨!'가 아줌마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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