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 Feb 02. 2024

김치를 못 먹는 아이

초딩입맛은 어떻게 되었나

나는 어릴 때 김치를 못 먹었다. 안 먹은 게 아니라 정말로 못 먹었다. 내 목구멍은 셔터라도 굳게 내려져 있는지 김치를 완강히 거부했고 서른 개 남짓한 치아가 제아무리 열심히 잘게 씹어 넘기려 해도 요지부동 받아주질 않았다. 배추에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지 아님 양념 맛 때문이었는지 김치는 내 입에서 헛구역질이라는 반사작용을 일으켜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무한반복으로 씹게 했고 그 지경쯤 되면 나는 삼키지도 뱉지도 못해 기어코 눈물콧물을 다 짜내고야 말았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아빠는 "쯧쯧쯧" 늘 찰지게 혀를 찼고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는 게 대체 말이 되냐!"라는 말씀을 진득하게 내뱉으셨다. 맞다, 나는 한국사람이고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근데 김치를 먹는 게 애국도 아니고 못 먹는다고 부모님의 위신이 깎이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김치 앞에만 서면 부끄러워졌다.


엄마가 입맛이 없을 때 즐겨 만드시던 김치죽, 김치가 듬뿍 든 국수,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볶음밥의 김치를 골라내느라 나는 밥때가 되면 늘 곤혹스러웠고 반찬으로 달랑 김치만 올려져 있을 때 내 얼굴은 죽상이 되어있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김치 밖에 안 보여 젓가락 들고 골라내느라 한세월이었다. 어쩌다 입안에 들어온 김치 조각을 입안에 머금고 삼키지 못하는 놀라운 감별능력까지 생겨버렸으니 어쩌면 대단한 미味적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영락없이 한심한 꼴이었을 테고 엄마는 차마 어쩔 수 없다는 듯 햄이나 소시지, 달걀말이를 부쳐 주시곤 했다. 


이쯤 되자 성장기에 도래해 점점 약골의 몸으로 변하기 시작한 나를 보며 김치 편식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졌다. 차를 타면 곧잘 멀미를 하툭하면 어질어질했으며 배탈이 잘나서 화장실 출입이 잦은 것도 결국 김치 결핍이 원인제공을 했다는 말이었다. 아니 이러다가 조만간 건강을 크게 해칠지도 모른다는 근심걱정이 밀려왔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 김치에 대한 나의 입맛은 바뀌지 않았다.


초딩입맛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뛸 듯이 기뻤다. 부끄러웠던 나와 비슷한 입맛을 가진 동지들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구나 싶은 반가움이 살갑게 악수를 청해 오는 기분이었다. 방방곡곡에 포진해 있는 초딩입맛 소유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간의 편식 때문에 말 못 할 구박과 은근한 비난으로 힘드셨죠?" 하며 으쌰으쌰 서로 어깨동무하고 힘을 북돋아주며 대동단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과 나의 변辨을 해보자면, 그러니깐 우리의 편식에도 나름의 정치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나무위키가 알려주는 초딩입맛의 역사랄까! 쌀농사를 지으며 곡류 위주이던 우리의 식문화는 서양문물의 급격한 유입과 산업화로 다양한 식재료의 범람을 맞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한식류 반찬으로 녹아들었다. 경제개발시기와 맞물렸던 1970년대 이후 태생들은 우리의 전통 반찬류가 아닌 햄, 소시지, 어묵, 돈가스 등 놀라운 맛의 각종 가공육 요리와 반찬들이 쏟아지자 순진한 입맛을 알아버렸고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밥을 남기면 이런저런 말을 듣기도 하고 신토불이를 중시하는 시국에 음식을 가리는 행동 자체가 밉살스럽다는 인식도 있었다. 반면 초딩입맛에 대비되는 아재입맛(아저씨 입맛)은 가리는 게 없는 식성 탓에 어디에서나 환영받고 복스럽다는 칭찬을 넘치게 받았다. 내 눈에도 그런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의 식성은 잘 변하지 않았으니, 편식 때문에 속 끓이던 세월은 꽤 오래 지속되어야만 했다. 다행히 그렇게 삶이 끝나지는 않았고, 어느 날 나는 놀라운 김치의 맛을 알게 되었으니 되돌아온 입맛은 무럭무럭 자라 초딩입맛을 졸업하는 시기가 드디어 찾아왔다.


모든 건 때가 있었다. 십수 년 간 철통 같던  김치 보이콧은 남영동 하숙 시절에 전라도 출신의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으면서 허물어졌다. 김치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니 이래저래 온갖 것을 먹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맛의 음식을 접하고 내가 먹을 음식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여러 가지 요리를 찾아 먹을 기회가 생겼으며 술을 마시는 유쾌한 분위기에서 난생처음 보는 안주를 먹으며 신세계를 발견했다. 내가 익히 알던 식재료가 놀랍게 변신해 전혀 다른 맛을 준다는 사실에 무릎과 손뼉을 동시에 쳤다. 그간 안 먹어오던 것들을 맛보며 '아! 이런 맛이 있었구나. 여태 내가 이걸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탄식과 감탄을 쏟아냈다. 맛집을 돌아다니며 먹는 행복을 누리자 나의 편식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몸이 먼저 알고 신호를 보낸다. 육식만큼이나 채식을, 과식보다 소식을,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푸드를, 가공식품에 비해 천연 식품을 먹으면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 그걸 넣어 달라고 계속 나에게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이 요즘 고맙다. 건강한 삶을 찾아가는 밥상에 내 가족의 숟가락, 젓가락이 같이 놓인다는 점에서도 기쁨과 자부를 느낀다. 지금 나는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전, 김치만두, 김치말이 국수, 묵은지 찜, 라면과 먹는 김치 등 어떤 김치도 가리지 않는다. 오래 찬밥신세였던 음식이기에 더 각별하다. 그래서 먹기 전에 꼭 외친다. "그럼 잘 먹어 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