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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Aug 11. 2020

"깡촌" 다트머스가 집이 되기까지

Making Home in the Middle of Nowhere

(Damn Right...)

다트머스 대학이 위치한 뉴햄프셔주의 해노버는 한마디로 깡촌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아마 "읍"도 아니고 "면" 정도 될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면(面)이 읍(邑)으로 승격되는 기준 중 하나가 인구 2만명이라고 하는데, 20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해노버의 인구는 11,000명을 조금 넘는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다트머스 대학에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외지인이라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아무 대학이나 한 곳을 떠올려 보자. 물론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도 있겠지만, 상당한 비율의 학생들이 서울 출신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 어쩔 수 없다고? 그럼 이번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UCLA를 생각해보자. 물론 미국의 타 지역 출신 학생이나, 세계 곳곳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긴 하지만, 신입생 기준 무려 70%, 편입생 기준 무려 96%가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출처: UCLA 2018-2019 Undergraduate Profile


다트머스는 전혀 이렇지 않다. 다트머스 학생 중 뉴햄프셔주 출신은 10%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깝게는 미국 동부, 멀게는 세계 각국에서 오직 다트머스를 다니기 위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일부러 해노버라는 깡촌에 모인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다트머스는 학생들에게 단지 대학교일 뿐 아니라, 4년간 일상을 꾸려나가야 할 "집"이다. 


하지만 사실, 다트머스를 나의 "집"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1년 가까이의 시간이 걸렸다. 변명해보자면, 나는 대도시 중의 대도시인 뉴욕과 서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도시가 아닌 곳에서의 삶은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트머스 합격자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뉴욕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고 몇 시간 동안 똑같은 침엽수림이 펼쳐진 I-91 고속도로를 지날 때 나는 창 밖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 학교는 내가 살면서 가본 곳 중에 가장 깡촌일 것이라고. 그리고, 다트머스랑 나는 100% 안 맞을 것이라고. 


물론 대학교 지원 당시 나는 동문 인터뷰에서 마치 나는 다트머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척하며 “어차피 일을 하기 시작하면 평생을 도시에서 보내게 될 테니 대학 4년만큼은 도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라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 거짓말은 입사 원서의 지원동기란에 "돈을 벌려고 지원했지 왜긴!"이라고 쓰지 않는 것만큼이나 상식이자 센스이니까.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당시엔 내가 지원했던 열 몇 군데의 학교 중에 하필 다트머스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트머스 대학에 가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학교에 통보를 했을 때 내 심정은 사실 이랬다.


출처: 무한도전,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이미 내린 결정이니 처음 1년간은 어떻게든 적응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10월 말부터 내리는 눈이 4월 말까지 녹지 않는 혹독한 겨울을 가진 곳, 가장 가까운 맥도날드가 다른 주에 있어서 차가 있어야만 빅맥을 맛볼 수 있는 곳, LTE는 아예 잡히지 않고, 그나마 잡히는 3G보다는 학내 와이파이가 더 빠른 곳 -다트머스가 위치한 해노버라는 작은 마을은 도시의 삶에 익숙한 나로서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더랬다.


신입생 때 학생들이 다트머스에 대해 갖는 애정과 자부심, 그리고 소속감 역시 내게는 부담스러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1학년 초반 특유의 잠시 스쳐가는 분위기였지만, 모두가 진심으로 다트머스를 최고라고 생각하고, 이 곳에서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나만 그렇지 못하다는 죄책감은 꽤나 큰 무게였다. 어쩐지 나만 이곳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느낌, 어쩐지 앞으로도 계속 겉돌 것만 같은 두려움과 불안함. 돌이켜보니 나는 이런 감정들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던 것도 같다.


아직 채 녹지 못한 눈의 틈새로 젖은 잔디가 빼꼼 고개를 내밀던 1학년 겨울과 봄 사이의 어느 날, 나는 입학 이래 처음으로 뉴욕에서 봄방학을 보낸 후 해노버행 버스를 탔다. 아직은 해노버보다 더 익숙한 뉴욕을 출발할 때만 해도 "으으, 다시 해노버라니 정말 싫다."는 마음이었다. 고층 건물들이 멀어지고, 어느새 고속도로에는 끝없는 산과 나무뿐인 길 위에서 내 마음은 여정 내내 심란하고 시끄러웠다. 그런데 웬걸. 버스 창문 너머로 베이커 타워가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익숙하고 편했다. 꼭 집에 온 듯했다. 


그랬다. 내가 미처 돌아보지 못한 틈에도 다트머스의 시간들은 켜켜이 쌓였고, "깡촌"이라고 미워하던 다트머스는 결국 집이 되었다. 나는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 곳을 위해 만들어진 사람은 없었다. 잘 적응하는듯 보였던 다른 사람들 역시 모두 조금씩 부딪혀가며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트머스에 온지 1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조금 더 자유롭게, 그리고 조금은 덜 방어적으로, 다트머스에서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다트머스를 집처럼 느끼게 해줬던 베이커 타워. 시즌을 고려했을 때 당시엔 이것보단 훨씬 황량했다)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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