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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Sep 30. 2021

자전거 도둑의 자전거를 훔치다!

Stealing a Bike Back from the Bike Thief

캠퍼스 대부분이 평지인데다, 자동차 통행량이 많지 않은 다트머스는 자전거를 타기에 정말 안성맞춤이다. 없어도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있으면 굉장히 편한 것이 바로 자전거인데, 늦잠을 자서 지각할 위기에 처한 경우 특히 유용하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면 캠퍼스 끝에서 끝이라도 최대 10분 내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에 최적화된 캠퍼스인만큼, 모든 건물 앞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에는 늘 자전거가 꽉 들어차 있다. 특히 식사 시간에 식당 앞에는 자전거를 묶을 곳이 없어 자물쇠가 자전거 앞바퀴살 사이를 통과해 자전거 몸체에 감기도록 채워야 할 정도로 자전거가 많다. 이렇다 보니, 캠퍼스에서 가장 빈번한 도난 사고가 바로 자전거 도난 사고이다. 나 역시 자전거 도둑들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두 번이나 자전거를 새로 살 수 밖에 없었다.


내 첫 번째 자전거는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어딘가에서 주워온 것으로, 다트머스에 온 첫 날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차에서 이삿짐을 내리는 동안 자전거 거치대에 두었는데, 자물쇠를 채워두지 않았더니 한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자전거만 주워오고, 자물쇠는 준비해 오지 않은 순진한 우리 뉴욕 촌놈들의 탓이 컸다. 화는 나지만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자전거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쉽지만 잊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자전거는 내가 1학년 봄쯤 중고로 구입한 것이다. 학교 생활을 해보니 자전거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중고 장터에서 50 달러 정도의 돈을 주고 구입한 이 자전거는 (워낙 평지인 탓에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경사에 따라 기어도 바꿀 수 있는 나름 좋은 녀석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칙칙한 색의 자전거는 특히 코옵에 식료품 장을 보러 갈 때 유용했다. 비닐봉투를 양 손잡이에 걸고 자전거를 탈 수 있어 무거운 짐을 들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바로 이 코옵 근처에서 장을 보는 사이에 자전거를 도둑맞았는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캠퍼스에서 잃어버린게 아닌 경우 대부분 근처 고등학생들의 소행이라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쪽 지역을 지날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자전거 거치대에 있는 자전거들을 훑어봤지만 내 자전거는 찾을 수 없었다.


세 번째 자전거는 1학년 여름 학기에 인터넷을 통해 구입해 직접 조립한 것이다. 기어 따위는 없는 굉장히 단순한 디자인의 이 자전거는 여성용이라서 안장이 넓은 것이 장점이었다. 그리고 자전거 몸체가 빨간색과 흰색의 조합이라 눈에 띄었다. 여기에 밀짚 바구니까지 달아놓으니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지만, 두 번의 도난으로 약이 바짝 올라있던 나는 몸체의 붉은 부분에 수정펜으로 큼지막하게 이름까지 써놓았다.


‘이 정도면 절대 못 훔쳐가겠지?’


직접 조립한 자전거라 애착이 컸던 나는 처음으로 캠퍼스 경찰에게 가서 자전거 등록까지 했다. 두 번째 도난을 겪으며 알게 된 자전거 등록제란 각 자전거에 고유 번호를 부여해 관리하는 것이다. 등록된 자전거의 경우 도난 신고를 하면 캠퍼스 경찰이 찾아주기에 훨씬 수월하다고 했다.


그리고 약 6개월 간은 아무도 자전거를 훔쳐가지 않았다. 내 다트머스 바이크 라이딩 역사상 가장 오래 자전거를 도둑맞지 않은 기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2학년 겨울이 가고, 봄 학기 중반쯤 눈이 슬슬 녹기 시작하길래 다시 자전거를 조금 타볼까 하고 식당에 자전거를 가져갔던 날 자전거를 또 도둑맞고 말았다.


‘어떤 간 큰 놈이 대문짝만하게 이름까지 써있는 자전거를 훔쳐가?’


잔뜩 화가 난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캠퍼스 경찰에게 도난을 신고했지만, 등록을 했음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자전거 등록은 장기간 유기되었던 자전거 주인을 찾아 줄 때만 유용한 듯 하다.) 나는 자전거 도둑들에게 질려서 새로 자전거를 사지는 않았다. 전공을 정하고 난 후, 1학년 때보다 이동 패턴이 정형화되었고 캠퍼스 곳곳을 보다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아내어 자전거에 대한 필요가 줄어든 탓도 있었다.


다음 해 가을, 베이커 도서관 옆 문으로 나오던 나는 굉장히 낯익은 자전거를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내 이름이 써있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내 자전거에는 새로운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어떤 놈이 훔쳐간건지 확인하고 한바탕 망신을 주고 싶었지만 당장 가야할 곳이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만 되찾아 가기로 했다. 하는 수 없이 거치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필통에서 커터칼을 꺼내 자물쇠를 잘랐다. 누가 봐도 내가 훔치는 것처럼 보였기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외쳤다.


“이거 내 자전거에요. 누가 훔쳐갔던 내 자전거를 다시 찾는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걸 훔치는게 아니라니까?”


사람들의 의심어린 시선을 꿋꿋이 견디며 자전거를 되찾은 나는 그 길로 새 자물쇠를 구입해 내 기숙사 앞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묶어두었다. 다트머스 마지막 해에는 전공 건물과 가까운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탈 일이 많지는 않아 자전거는 거의 항상 그 곳에 묶여 있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며 자전거를 두고간다며 친한 후배들에게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는데, 지금 이 자전거는 어떻게 되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또 어딘가에서 도둑 맞은 건 아닐까?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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