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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04. 2021

명문대에 출몰한 바바리맨의 정체

Streaking the Finals & Ledyard Challenge

1학년 때 나에게 가장 큰 문화충격을 준 다트머스의 전통 중 하나는 바로 기말고사 스트리킹이다. 스트리킹이란 알몸으로 대중 앞을 달리는 것인데, 한국의 바바리맨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바리맨이 잠깐 코트를 열었다 닫는다면 스트리킹은 계속 나체 상태로 뛰어다닌다는 차이 정도...? 스트리킹은 주로 수강생 수가 70~80명대로 많은 큰 수업의 기말고사 시험 중 예고 없이 일어난다.


의예과라서 규모가 큰 수업을 많이 들어본 나는 1학년 내내 스트리킹을 여러 번 당했다. 스트리킹은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대여섯명 정도의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기말고사가 진행중인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Happy finals!”를 외치며 사탕을 뿌리고 간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왜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스트리킹을 하는 사람은 보통 같은 다트머스 학생들이다. 남자 비율이 살짝 높지만 보통 남녀가 섞여있다. 개론 수업들은 아무래도 주로 1학년생이 듣는 반면, 스트리킹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선배들인데 내 추측으로는 후배들이 시험을 편하게 보라고 긴장을 잠시 풀어주려는 것인 것 같기도 하다. 기말고사 기간의 알몸 전통은 다트머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에는 "Primal Scream"이라는 전통이 있는데,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하기 하루 전에 학생들이 나체로 Old Yard를 뛴다고 한다. 심지어 학생들을 응원하는 구경꾼도 있고, 마칭밴드가 연주를 할 정도로 큰 행사라고...! 예일대에도 "Naked Library Walk"이라는 비슷한 전통이 있는데, 기말고사 기간에 학생들이 나체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사탕을 나눠준단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대체 왜 이러는지... 혹시 기말고사 스트레스로 단체로 미쳐버린걸까?


처음 스트리킹을 당했을 때는 '시험 중에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하며 엄청 당황해서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랐었는데 여러 번 당하고 나니 점점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봄 학기쯤 되니, 시험 보는 중에 스트리킹하는 선배들이 들어오면 책상에 던져진 사탕을 무심하게 한 개 까먹고는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하며 바로 다시 내 눈앞의 시험지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냥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는 “어머나, 어떻게 그래!” 할지 몰라도 실제로 당해보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고 시험 도중에는 다들 당장 자기 앞에 놓인 시험에 온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아무도 크게 놀라는 리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오히려 스트리킹 그 자체보다도 사람들의 덤덤한 반응이 더 놀라울 정도이다.


심지어 다트머스 교수님들도 스트리킹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어서인지 대부분은 그냥 조용히 무표정으로 상황을 넘긴다. 하지만 앨리안 언니가 1학년 때 들었던 수학 수업의 기말고사에서는 스트리킹이 시작되자 노교수님이 역정을 내시면서 스트리킹하던 선배들을 잡겠다며 뒤따라 뛰어가신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스트리킹하는 학생들이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서 실제로 잡지는 못하셨지만 말이다.


기말고사 스트리킹과 함께 다트머스의 별난 누드 전통으로 손꼽히는 것은 "레드야드 챌린지 (Ledyard Challenge)"이다. 레드야드 챌린지는 보통 봄학기 후반이나 여름학기에 이루어지는데, 옷을 홀딱 벗고 뉴햄프셔주와 버몬트주 사이를 가로지르는 코네티컷강을 헤엄쳐 뉴햄프셔주에서 버몬트주로 건너가는 것이다. 어차피 수영을 하는 동안 물 안에 있으니까 알몸이여도 괜찮지 않냐고?


레드야드 챌린지의 난관은 알몸으로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다. 뭍으로 나와서 ‘흐아 내가 미친 짓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후회가 들 때야 비로소 챌린지가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뭍으로 나오고 바로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까 훌훌 벗어던져놨던 옷은... 출발지점에 고스란히 있다! 그래서 레드야드 챌린지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발거벗은 채로 버몬트주를 출발해서 Ledyard Bridge를 냅다 뛰어 뉴햄프셔주의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10분 이상을 도로에서 알몸으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무사히 다리를 건너와 잽싸게 옷을 찾아 입고 함께 도전에 성공한 친구들과 함께 성취감에 젖어 흥겹게 돌아올 수 있다. 운이 나쁘면? 오픈된 공간에서 알몸으로 뛰다가 수많은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알몸을 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알몸으로 캠퍼스 경찰 (S&S)이나 진짜 경찰을 마주치는 민망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외설죄로 법적 문제까지도 있을  있다. 공공장소에서 알몸으로 있는 것에 대해 뉴햄프셔주의 법과 버몬트주의 법이 달라서, 두개 주를 모두 왔다 갔다 하는 레드야드 챌린지는 버몬트주의 법에 따르면 합법이지만, 뉴햄프셔주 법에 따르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면이 있지만, 레드야드 챌린지는 소포모어 서머 (2학년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여름학기) "Must-do list" 있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수년간 위험을 감수하고도 도전해온 다트머스만의 독특한 전통이다.


Written by Song He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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