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태도

미라클 모닝 11일 차를 시작하며,

by 소행젼
ben-white-4K2lIP0zc_k-unsplash.jpg 출처 : unsplash @Ben White

며칠 전에 아이 둘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어린이 과학관에 갔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많이 돌아다니지 못한 것도 있고, 둘째가 아직 어려서 첫째가 친구들에 비해 다니지 못한 것도 있다. 나는 첫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컸었다. 그래서 이번에 남편과 한 명씩 아이를 맡아서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체험을 했다. 둘째도 밖에 잘 다니지 못해서 그런지 신이 났고 아직 두 돌이 안되어서 말이 통하지 않아 막무가내 뛰어다니고 마스크도 벗으려고 해서 남편이 맡아서 케어했다. 그러는 동시에 나는 첫째 옆과 뒤를 따라가며 지켜보고 함께 소통해주고 있었다.


그런 시간 중에 나는 세 명의 또래 아이들을 보았고 그들의 부모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딸아이와 체험을 하는 시간 동안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차례를 지키지 않았었다. 우리 딸이 어디서 만져보고 체험하고 있으면 그냥 와서 자기 물건인 마냥 만지려고 했다. 아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의 부모였다.


첫 번째 엄마는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저희 아이가 차례를 지키지 않았나요? 친구야 미안해. (자기 아들을 보며) 00아, 차례를 지키면서 하는 거야. 그리고 친구한테 나도 해도 돼?라고 묻는 거야." 이렇게 케어하고 아이에게 가르쳤다. 과학관을 돌아다니면서 그 첫 번째 엄마와 동선이 몇 번 겹쳤는데 다소 지쳐 보인 얼굴이었다.


두 번째 부모는 아예 아이 근처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는 덩치가 있어서 힘이 센 편이었다. 우리 아이는 밖에서 수줍음이 있는 편이고 요즘은 키즈카페도 가본 적이 없어서 아이가 잘 모르는 또래 아이들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는지 최근에는 실제로 본 경험은 없었다. 그런데 딸은 말 한마디 못하고 자신이 놀고 있던 물건을 뺏는 모르는 남자 친구에게 당연하게 내주었다. 수줍고 당황스러워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남자애는 우리 딸에게 바람이 나오는 호스(소방관 체험)를 얼굴에 장난쳤다. 나는 그 아이에게 친구한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 아이의 보호자는 어디 있었을까?


세 번째 아이는 다른 체험장에서 혼자 독차지하고 놀고 있었다. 그 아이 엄마로 보이는 분은 그 근처 앉아있는 곳에서 핸드폰만 하고 있었다. 우리 딸은 그 벽돌을 올리는 체험을 하고 싶어 했다. 순서를 기다리다 세 번째 아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 여니 '우리 어서 하고 가자'라고 했는데, 그 아이는 잠시 후에 돌아오더니 마치 처음부터 자기의 물건이냥 그 조정대를 꽉 붙잡았다. 나는 우리 딸이 아니더라도(예전에 봉사활동으로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몇 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야 차례를 지켜야지'라고 말했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솔직히 이런 우는 소리도, 조화롭지 못한 사정에 나 또한 짜증도 나고 있기가 싫었다. 그런데 그때 그 세 번째 엄마가 나타나 아이에게 친구 차례라고 말하니까 아이는 인사불성이 되며 울었다. 그리고 아이를 데려갔다. 나는 솔직히 그 순간이 불편했다. 생각해보면 왜 짜증이 났나면 두 번째, 세 번째 엄마의 태도였다. 두 번째 엄마는 보이지도 않았고, 세 번째 엄마는 아이 대신 양해를 구하는 태도가 없었고 편하게 앉아있다가 본인이 처음부터 아이 옆에 있어서 케어해야 하는 것을 내가 왜 남의 아이한테 차례를 지키라는 등의 소리를 하게 만드나 라는 억울함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 순간이 싫다고 나는 딸에게 (떼쓰는) 세 번째 아이에게 양보하고 가자고 했다면 좋았던 교육이고 내 태도였을까? 그 순간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앞에서 인사불성 우는 아이를 엄마가 훈육하고 데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 이후에 딸이랑 그 체험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말했다.


'공공장소에는 너도, 다른 친구도 차례를 지켜야 해. 너희만의 장난감이 아니고 다 같이 써야 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떼쓴다고, 운다고 다 들어줄 수 있는 게 아냐. 알았지?'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다른 곳에서 체험을 하는 중 첫 번째 엄마가 다시 나타났고 여지없이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만지는 아들을 위해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았다. 동시에 세 번째 엄마가 지나가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아까 속상했지? 친구 때문에.."

그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엄마의 말이 좀 신경 쓰이고 거슬렸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나는 그 세 번째 엄마가 아들에게 한 말이 혹시 '본인 아들이 떼를 쓸 때의 상황이었나? 그 부분에 대해 속상했냐고 묻는 거면 맡는 훈육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공공장소에서 차례를 지키지 않는 아이에게 '속상했지?' 이게 맞는 말인가? 맞는 표현인가?라는 생각을 되물었다.

어떤 부분이 속상한 거이지? 아이들과 놀다 보면 내 아이만 짠하고, 기특하고 그런 분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세 번째 엄마가 그렇다는 확대해석은 아니다) 상황에 맞게 분별력 있게, 자기 힘이 강한 아이로 키워야지. 뭐든 뜻대로 안 된다고 위로해주고, 우리 아이만 짠하고, 피해자로 생각하고 보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도 아이인 어른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단호한 훈육과 위로와 격려를 맞는 상황에 적절히 쓰는 것도 부모의 능력이고 꼭 바로 알고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거 보면 노 키즈존은 아이들 때문에 생긴 게 아닐 터이다. 기본 매너가 없는 부모들 때문에 생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는 아이기 때문에 질서가 없을 수도 있고, 떼를 쓸 수도 있고 때론 다른 친구가 불편하게도 할 수 있다. 아이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케어하는데 그 양해는 아이일 때에는 대신 부모가 하면서 자기 아이에게도 공동생활을 하는 태도를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식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배울 수 있지만 생활습관, 삶의 태도, 가치는 가정의 교육에서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이곳저곳 구경시켜주기, 여행하기 등에 앞서 가장 기본은 작은 습관,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가르치는 게 가장 기초이며 먼저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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