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명절을 보내고 마지막 연휴의 날이 시작되었다. 한 일이 없는 것 같아도 결혼 후 명절을 지낸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예전에는 나에게 많은 공휴일 날들의 연속의 의미였다면 지금은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날들이라고나 할까? 결혼 후 명절은 더 이상 내게 휴무가 아니다.
오늘 4시 50분에 알람에 눈을 뜨고 조금만 있다가 일어나자 했는데 깜박하고 잠이 더 들었다. 다행히 남편이 조용히 깨워줘서 미라클 모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가꾼다는 것'이다. 그게 정원을 가꾸든 내 삶을 가꾸든.. '가꾼다는' 그 말이 예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좀 마음이 피곤하고 힘들 땐 그 단어를 많이 생각한다.
'가꾸는 중이잖아. 뭐 세상에 쉬운 게 어딨어. 그래. 그래도 내 정원 내가 잘 신경 쓰고 가꾸면 되지. 다른 변수에 너무 흔들리거나 휘둘리지 말자.' 이런 생각을 왕왕하게 되었다. 그러니 속이 조금은 한 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내 정원에는 내가 어떤 씨를 뿌려서 어떤 열매와 꽃을 피울지 그 주체는 '나'이고, 비바람이 불면 때로는 울타리고 만들고, 비닐로 따뜻하게 해 주고, 거름도 주고 그러면서 내가 꾸미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착각도 들게 하고, 주변의 상황에 조금은 단단해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한테 그러지?', ' 왜 나만 예의를 지켜야지?'라는 등 그 '억울함' 등이 나를 괴롭혔다. 그 감정은 생각보다 무서워서 나를 부정적이게 하고, 나를 화나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지속되면 '나만 손해다'라는 생각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내 정원을 내가 가꾸는 데 그런 생각이 오래 영향을 끼치면 나는 가지치기를 통해서 그것을 자를 의무와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 새벽 기상이 사실 아무것도 내게 주지 않을 수 있다. 아무것도 주지 않음 어때? 꼭 뭘 내가 받아야 하는 그 부담감으로 시작할 필요도 없다. 삶의 공기는 바뀌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삶을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은 이런 연습을 통해서 내가 가꿀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정원에서 꽃이 시들면 물을 주고, 벌레로 병들면 가지치기도 하고, 거름도 주고, 햇빛 잘 드는 곳으로 옮겨보기도 하고 이런 가꾸려는 시도가 나는 그... 시도를 아름답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