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딱 그 집에만 얹혀 산다

눈알고둥

by 깅이와 바당 Mar 08. 2025

고둥옷대마디말이 눈알고둥 위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고둥옷대마디말은 살아있는 눈알고둥 위에서만 사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 곳에서나 쉽게 적응하고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이 조금만 낯설어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이 가능해서 문명 이전에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인간처럼 환경 적응력이 좋은 생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고 서식 조건이 매우 까다롭거나 서식 범위가 극단적으로 제한되는 경우도 많다.


질퍽한 펄에 사는 농게(좌)와 조금 더 건조한 곳에 사는 흰발농게(우)질퍽한 펄에 사는 농게(좌)와 조금 더 건조한 곳에 사는 흰발농게(우)


바닷가 생태에는 미세한 환경 차이로 인해 사는 종이 달라지는 현상도 흔히 관찰된다. 예를 들면 농게와 흰발농게처럼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땅의 수분 함유량이나 입자 크기 같은 작은 차이로 종이 달라지고 영역이 나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땅이나 물이 아닌 다른 생물 위에서 그것도 특정 종 위에서만 사는 별난 경우도 있다. 지구상 오로지 한 곳(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눈알고둥Lunella correensis 위에서 사는 고둥옷대마디말Pseudocladophora conchopheria이다.


눈알고둥을 덮고 있는 고둥옷대마디말눈알고둥을 덮고 있는 고둥옷대마디말


서식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눈알고둥의 패각은 녹색의 고둥옷대마디말로 덮여있는 경우가 많다. 고둥옷대마디말은 녹조류의 일종으로 언뜻 보기엔 이끼처럼 보인다.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대나무 같이 마디가 있는 길쭉한 모양이라 고둥옷대마디말이란 이름이 붙었다.


눈알처럼 보이는 눈알고둥의 뚜껑눈알처럼 보이는 눈알고둥의 뚜껑


눈알고둥은 우리나라 바닷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고둥으로 각정(고둥 껍데기 나선이 시작되는 곳)이 날카롭지 않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모양이다. 눈알고둥 패각의 각구(입구)에는 뚜껑이 있는데 볼록렌즈처럼 보이기도 하고 눈 같아 보이기도 해서 눈알고둥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말 고둥옷대마디말은 눈알고둥 위에서만 자랄까?


녹조류가 바위를 덮은 광치기해안녹조류가 바위를 덮은 광치기해안


성산일출봉에서 이어지는 광치기 해안은 신양리층이라는 암반 지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편평하면서도 주름과 갈라진 틈새가 많고 표면에는 이끼가 연상되는 녹조류들이 자라고 있어 바위가 온통 녹색으로 보인다. 그리고 바위틈에는 유독 눈알고둥이 많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현미경으로 본 고둥옷대마디말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현미경으로 본 고둥옷대마디말


눈알고둥 주변 바위 몇 군데에서 고둥옷대마디말과 비슷해 보이는 녹조류와 눈알고둥 위의 조류를 채집한 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김주희박사님에게 의뢰하여 현미경으로 비교해 보니 고둥옷대마디말은 눈알고둥 패각에서만 발견되었고 주변 암반의 것은 전혀 다른 종이었다.  


고둥옷대마디말이 눈알고둥 위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고둥옷대마디말은 살아있는 눈알고둥 위에서만 사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죽은 지 얼마 안 된 고둥에서는 발견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벗겨진다. 얼핏 생각하면 죽은 고둥의 껍데기는 파도에 구르기 때문에 그럴 것 같지만 바닷가엔 빈 고둥껍데기로 남아있는 것보다 집게가 들어가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집게가 들어 있으면 굴러다니지 않는데도 고둥옷대마디말은 그 껍데기에 살지 않는다.

집게가 사는 눈알고둥패각(좌)과 살아있는 눈알고둥(우)집게가 사는 눈알고둥패각(좌)과 살아있는 눈알고둥(우)

이런 현상에 비춰 고둥과 조류의 관계를 추정해 보면 패각의 형태나 특성 외에 살아있는 눈알고둥의 어떤 역할로 고둥옷대마디말이 붙어살게 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화학적 작용일 수도 있겠으나 난 그들의 행동과 더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눈알고둥은 완전히 햇빛에 노출된 곳보다는 움푹하거나 갈라진 틈에 주로 머물고 바싹 마른 곳이 아닌 축축하게 습기가 유지되는 곳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눈알고둥이 완전히 빛이 없는 돌 아래에만 숨어 있다면 고둥옷대마디말은 광합성을 할 수 없고 물기 없이 마른 곳에 노출되어 있으면 고둥옷대마디말도 말라버릴 텐데 눈알고둥이 적당한 빛과 습기가 있는 곳에 있으니 서로 필요조건이 같지 않을까?


먹이 활동 중인 눈알고둥먹이 활동 중인 눈알고둥

그럼 이 둘의 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상리공생일까 아니면 얹혀사는 고둥옷대마디말만 좋은 편리공생일까? 아직 밝혀진 바는 없는 듯하지만 추정하건대 눈알고둥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고둥옷대마디말이 붙어사는 눈알고둥을 만져보면 표면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고둥의 패각도 풍화를 겪는다. 세월이 지나면 표면이 닳아서 속이 드러나거나 깨지기도 하는데 옷을 입고 있으면 훨씬 안전할 것이다. 한여름 뙤약볕은 고둥 껍데기도 뜨겁게 달구기 때문에 그냥 버티긴 쉽지 않은데 수분을 머금은 고둥옷대마디말이 덮고 있으면 온도를 낮추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모두 추정이고 가설이지만 난 이 둘의 공생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맹독성 문어를 키웠던 이야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