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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다큐멘터리 제작은 포기합니다

아이 엠 크랩 

by 깅이와 바당 Mar 26. 2025

늘 하던 일인데도 선뜻 시작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차에는 이미 촬영장비와 다이빙 슈트가 실려있다. 



나의 다큐 기획 <아이 엠 크랩>이 작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획안 공모에서 최종 6개 작품에 선정되어 올해는 당연히 그 작품을 만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들로 인해 제작을 포기했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국도 일부 영향이 있었고 당선작에 대한 가산점도 사라져 제작 지원을 받으려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선정될 확률도 낮은데 운 좋게 지원을 받아 고생 고생해서 제작한다고 해도 내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방송프로그램을 누굴 위해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고민과 갈등을 하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았다. 


다큐멘터리를 방송국에서 의뢰받아 용역으로 제작하더라도 사실 겨우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를 남기면 다행인 형편인데 정부 지원금으로 제작하는 경우엔 오히려 내가 10%의 현금 매칭을 해야 하고 작품이 완성되어도 방송사에선 제값을 주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다. 요즘은 덜한다지만 과거엔 방영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흔했다.   

1인 독립 제작사를 운영하는 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하는 동안 100%에 가깝게 그 작품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큐의 질과 완성도가 결국 나를 증명하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비용과 시간을 아끼게 되지 않는다. 다만 스텝 인건비는 감당이 어려워 가급적 적은 인원으로, 될 수 있으면 혼자 해결하다 보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종종 생긴다.    


게다가 내 작품엔 실험적 요소도 많아, 한 두 번에 촬영이 가능하지 않거나 어려운 촬영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할 수 없어 결국 몸으로 때워야 할 경우가 많다. 


내 주위의 여러 독립 PD나 촬영감독들은 이구동성으로 방송 외주 제작 또는 용역 계약의 불공정성이나 지나치게 적은 인건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스텝 인건비는 내가 일을 처음 배우던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이제는 한 사람이 담당하는 역할도 너무 많고 심지어 장비도 갖추어야 한다.  

내가 촬영감독이던 시절 카메라는 방송국 기자들이 갖고 다니는 커다란 ENG카메라 또는 광고나 홍보영상을 촬영할 때는 영화용 필름카메라를 사용했고 한 대 이상 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카메라는 너무 고가라 렌탈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렌탈료는 제작사가 부담했다. 장비가 크니 혼자 운용하기 어려워 방송촬영 할 때는 1명,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3명의 조수가 붙었고 인건비는 모두 별도였다. 


지금은 카메라 가격이 낮고 크기도 작아졌지만 용도에 따라 다양한 카메라가 필요하고 드론이나 조명까지도 모두 촬영감독이 담당하며 자기 장비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나는 연출자이지만 조연출은 언감생심이고 촬영을 포함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품을 한다는 건 거대한 산을 넘는 것과 같고 작품을 준비하고 시작할 때의 마음은 큰 산 앞에 서서 정상을 바라볼 때와 같다. 산 앞에 도착하기 전에 기대감이 크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두려움과 부담이 더 커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제작하는 동안 몸을 갈아 넣고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도 어떤 것은 구상에 못 미치고 어떤 것은 아예 촬영이 안 되기도 하고 간혹 뜻하지 않게 좋은 장면을 건지기도 하면서 작품이 완성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내 자식 같은 작품이 그저 한 두 번 전파를 타고나면 지나간 과거로 잊히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대안으로 생각한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동안 촬영과 현장 경험을 통해 쌓인 에피소드와 정보들을 정리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곧 유튜브 채널도 운영할 계획이다. 늘 하던 일인데도 선뜻 시작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차에는 이미 촬영장비와 다이빙 슈트가 실려있다. 


물론 좋은 기회가 있다면 방송 프로그램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영화 <조수웅덩이 바다의 시작>을 보완하고 영화적 완성도를 높인 영화 제작도 다시 도전할 것이다. 


화창하게 개인 날이 빨리 오기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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