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늘부터 갓생
흰쌀밥에 스팸 한 조각,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베이컨, 짭조름한 명란젓…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이 세 가지 음식에는 모두 ‘아질산나트륨’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아질산나트륨은 십수 년 전부터 발암물질 논란에 휩싸였는데, 이번에는 ‘자살위해물건’으로 지정된다고 합니다. 자살위해물건? 듣기만 해도 무서운 단어인데요!
Q. 고기를 더 오래,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아질산나트륨
아질산나트륨은 고기를 좀 더 오래,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개발된 합성 물질이에요. 1859년에 독일의 화학자가 처음으로 발견했고, 식품 보존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10년 뒤에 합성에 성공해 본격적으로 음식에 쓰이기 시작했지요. 아질산나트륨은 주로 가공 육류 제품에 사용됩니다. 세 가지 장점이 있는데요.
- 첫째, 세균의 성장을 막아 고기의 신선도를 유지시켜 줍니다. 즉, 유통기한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어요
- 둘째, 색을 좋게 합니다. 붉은 고기를 더~ 선명하고 먹음직스러운 붉은색으로 만들어 줍니다.
- 마지막으로는 맛과 향을 개선을 합니다. 햄과 소시지 특유의 풍미의 비밀은 바로 아질산나트륨입니다.
놀랍게도 아질산나트륨은 아주 적은 양만 넣어도 이런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붉은 육류 제품에는 대부분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가 있습니다. 햄, 소시지, 베이컨, 핫도그 뿐만 아니라 명란젓, 연어알, 훈제오리에도 첨가된답니다.
아질산나트륨이 고기 색을 얼마나 맛있게 만들어주는지 볼까요? 아래 사진 중,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한 고기를 맞춰보세요.
정답은 3번입니다. 1번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이고요. 2번은 산소가 결합한 상태, 4번은 구워진 상태입니다. 3번이 확실히 색이 좋지요?
Q. 아질산나트륨이 먹음직스러운 붉은색을 낼 수 있는 이유
고기가 붉은 이유는 ‘미오글로빈’이란 단백질이 붉은색을 띄기 때문입니다. 미오글로빈은 근육에서 산소를 운반하고 저장합니다. 미오글로빈에는 철 분자가 결합되어 있는데, 철 분자가 산소와 결합해 붉은색을 냅니다. 철이 산소를 만나 산화된 것이요. 쉽게 말해 붉게 녹이 슨 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에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하면, 아질산나트륨의 부산물이 미오글로빈과 결합하게 되고 이 복합체가 이상적인 고기 색깔인 선홍빛을 만들어 냅니다.
Q. 그런데 왜 아질산나트륨이 자살위해물건이 됐을까?
놀랍게도 아질산나트륨은 자살 시도에 사용할 수 있는 유독물질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몸에는 미오글로빈과 비슷한 ‘헤모글로빈’ 이 있습니다. 헤모글로빈 역시 철 분자를 갖고 있고, 산소를 운반죠. 미오글로빈은 근육에서, 헤모글로빈은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질산나트륨을 섭취하면 대부분 질산이온이라는 물질로 분해됩니다. 이때 산소가 결합해야 하는 자리에 질산이온이 결합해 헤모글로빈은 산소운반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산소증을 유발하게 되어 두통, 현기증, 구토, 설사부터 심각하게는 청색증, 경련, 혼수, 호흡마비가 일어나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전에는 아질산나트륨을 실수로 마셨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아질산나트륨을 이용한 자살 건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가 아질산나트륨을 자살위해물건으로 지정해 아질산나트륨을 쉽게 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Q. 햄과 소시지가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60kg의 성인의 경우 아질산나트륨 3.6g이 하루 허용치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품에 첨가할 수 있는 아질산나트륨의 양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식육가공품의 경우 70ppm까지만 넣을 수 있는데, 굉장히 적은 양이에요. 1kg당 0.07g 이상 넣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햄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허용량 이상을 먹을 수 없습니다. 어육소시지는 kg당 0.05g, 명란젓은 0.005g, 그리고 훈제연어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허용치는 국가마다 다른데요. 미국은 kg당 2g까지 가능합니다.
Q 자살위해물건은 누가 지정하나요?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심사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최종 결정합니다. 2011년 제정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약칭: 자살예방법)’에 따른 것인데요. 자살예방에 대한 법도 있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자살예방법이 생긴 데에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로 국내 자살사망률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보건복지부가 2004년, ‘제1차 국가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생명 존중과 자살 예방에 대한 공익광고가 반영되기 시작했고요, 자살을 다루는 기사에 대한 지침도 생겼습니다. 구체적인 자살 방법이나 장소, 동기를 언급하지 않고, 직접적인 사진ㆍ동영상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등 모방자살을 부추기는 내용이 없도록요. 자살예방 상담 전화, 인터넷 상담, 자살예방 교육 등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답니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1998년 18.4명에서, 2011년 31.7명으로 말이지요. 마침내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약칭: 자살예방법)이 제정됩니다. 보건복지부 산하의 자살예방정책과 소관의 법률이고요. 이 법을 통해 자살을 예방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규정하여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취지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자살위해물건 지정’입니다. 자살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거나, 가까운 시일에 자살 수단으로 사용될 위험이 상당히 높은 것을 ‘자살위해물건’으로 지정해 관리합니다. 즉, 앞으로는 아질산나트륨을 자살을 도울 목적으로 판매하거나, 활용하는 방법을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Q 자살위해물건이란 말이 생소한데 식품 중에 또 이런 것들이 있나요?
자살위해물건에 대한 규정(고시)은 2020년 1월에 처음 제정되었는데요. 특정한 물질을 콕 짚어서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물질군’으로 지정합니다. 주로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현재까지 지정되었어요. 가장 먼저 지정된 물질군은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인데, 예로 번개탄, 연탄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올해 초에는 수면제, 진정제 등의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군이 지정되었죠. 중독성이 강해 남용이 우려되는 의약품 군을 지목하였습니다.
<참고문헌>
[1] Deepa K. Parthasarathy 외 1인, 『Sodium nitrite: The “cure” for nitric oxide insufficiency』, 2012년 11월, ㅡMet Science Vol. 92, Issue 3.
[2] 박인지 외 2인, 『아질산염 중독으로 인한 사망 : 14예 보고』, 2020년 5월 19일, Korean J Leg Med 2020;44:96-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