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지금의 나는 예쁜 말을 하고 싶다. 하려고 최소한 노력중이다. 한 때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뱉은 가시가 돋고 칼날 같은 말을 그저 "팩트"라는 사실로 무게없이 내어 놓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이 정직한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체로 그렇게 말을 하고 난 다음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는 감정은 기억난다. 말을 해야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조금은 분별하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모르는 서사들이 이해되면 소용없는 말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말은 생각보다 강력한 수단이므로..
혹은, 어쩌면 내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말로 인정하고 지나가버린다면 진짜 그렇게 될까 봐 낙관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해서, 유토피아 같은 소설을 만나면 그 갈증이 해소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 뭐 이런 세상이 어딨어... " " 상상 오지네... "
라는 반응보다, 이런 의사 선생님이 계시는 병원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
대학병원을 뒤로 하고 지역 거점병원인 혼조병원에서 근무하는 구리하라 이치토. 일반 진료부터 응급 의료까지 담당하고 대학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흡수하여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주는 곳. 이 곳에서 구리하라 이치토는 대학병원으로 옮겨 더욱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배울지, 혼조 병원에 남아 환자를 지킬지 고민한다. 고민 중에 결정에 확신을 주게 되는 일을 겪으며 의사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시리즈의 첫권이 늘 그렇듯 주인공 주변인물에 대한 서술도 이어진다. 아내인 하루,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남작과 학사,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 지로. 간호사 도자이와 미즈나시. 멘토와 같은 왕너구리 선생님과 늙은 여우 선생님.
4년전 만난 이 책은 나의 연말 루틴이다. 내가 갖고 있는 건 4권인데 모르는 사이 한권 더 나왔다는 것을 올 해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난 해에는 이 책을 아이 처럼 "으앙~"소리를 내며 울며 읽었다. 그 때는 그저 인류애가 뿜뿜하는 것에 감격스러워인 줄 알았는데 올해 다시 보니 아빠가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한이 되었다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간암말기로 아무 손을 쓸 수 없었을 때 아빠의 MRI 를 들고 작은오빠와 대학병원을 찾아 다녔다. 거동이 어려운 아빠가 직접할 수 없었을 뿐 더러, 아빠는 자신의 병명도 모르는 환자였기 때문에 우리의 최선은 그저 발품을 파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났던 의사는 매뉴얼대로 대응했다. 그의 대응이 두고두고 기억나서 사무치는 것을 그 역시 예측하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환자들 중 한명, 게다 환자를 동행하지도 않았던 우리. 사정을 헤아리기 어려웠던 그의 말이 심장에 박혔던 것이 기억난다. 꼭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했던 걸까. 우리는 아빠가 기적처럼 몇년을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최소한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 결정하기 위한 단서를 그에게 기대했다. 약간의 따스함이 묻은 위로가 있었더라도 우리는 그렇게까지 참혹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감입니다란 말 한마디 없이, 환자가 없으니 확답하기 어렵습니다.라는 건조한 말이 살을 도렸다. 작은오빠와 나는 병원 밖에 나와 늦은 점심을 저녁에 울면서 먹었다. 빵과 커피가 고작이었던..
책에는 예쁜 말이 가득이다. 예쁜 상황도 대체로 많다. 진심을 다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벅찬 행위인지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정을 짐작하고 그에 맞는 예쁜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다는 조건과 그리고 그 변함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진리와 함께 말이다.
" 비웃을테면 비웃으라고 해. 요령이 없는 우리는 이렇게라도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다. "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으로 마법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태어난 그 발밑 흙덩이 아래 묻혀있는게 아닐까. "
"괜찮습니다. 멈추지 않는 비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