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는 어떤 일을 해요?
의사냐고 묻는 낯선 얼굴은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환자였다.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의사가 아니고 병동 담당 사회복지사 입니다.”
흰 가운을 입고 일을 하는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 언뜻 봤을 땐 의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듯하다. 그냥 단순히 흰 가운을 입고 있어서, 흰 가운은 의사의 시그니처니까.
처음 병원에서 일을 할 때는 흰 가운을 입는 것이 단순히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유니폼이 있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뭔가 더 전문성이 있어 보이게 보였다. 그 우쭐거림은 3개월이 채 가지 않았다.
매일 아침 가운을 입으며 어렸을 적 만화 주인공이 변신을 하는 모습처럼 나는 원래의 나에서 사회복지사란 직업을 수행하는 나로 마음가짐을 바꾼다.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행위가 아니었다. 흰 가운은 더 이상 멋있는 옷도, 있어 보이는 옷도 아니었다. 나의 표정을 감추는 의식이었다. 내가 피곤하든, 개인적인 일로 힘들든, 아프든, 일하는 곳에서는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특히 정신적으로 더 취약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더더욱 나를 드러내지 않고 항상 일관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의사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실망감이 가득한 채로 말을 잇는다.
“아……. 복지사 선생님이시구나.. 혹시 그럼 제 주치의는 언제 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확인해보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려요. 저 여기 강제로 왔어요. 저 환자 아니에요.. 얼른 퇴원해서 나가서 애 봐야 돼요.. 선생님.”
병원에 오는 사람 중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이곳에 오기까지 환자 자신은 증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또 그 가족들은 질환에 대해 모른 채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환자를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현재 보호병동에 입원한 38명은 38개의 각자의 사연을 갖고 이곳에 있다. 처음 환자들이 입원했을 때 자신이 왜 입원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신이 원해서 입원하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입원의 이유도 모르고, 원하지도 않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그럼에도 모두의 보호를 위해 입원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벼운 기분장애와는 달리 중증질환은 많은 증상들이 논리적인 사고를 방해하여 현실 검증력이 떨어지거나 망상, 환청 등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기이하고 괴상해 보이는 것이 환자들에게는 현실이기에 자각을 하거나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어쩌면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은 평생 다른 사람들은 병이라고 하나 당사자는 병이라고 생각을 하기 어려운 생각 속에 빠져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환자가 정신이 나갔다고 하고, 환자는 그렇게 자신을 병원에 입원시킨 가족들이 자신을 모함하는 거라며 서로가 서로를 환자라고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고 있을 때면 마음이 갑갑했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듣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사의 이면을 보게 된다. 물론 환자 입장에서 느낀 주관적인 감정과 생각이기에 가족의 말도 들어봐야 사실여부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내가 만난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모두 끌어안고, 내가 해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고, 착각이었고, 비합리적인 신념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은 다른 사람이 책임져줄 수 없다. 설령 그게 의사일지라도, 사회복지사일지라도, 부모일지라도. 가엽거나 내일처럼 느껴지거나 하는 과잉 감정은 내려놓고,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나는 가운의 옷깃을 다잡는다.